전교 주일에 만난 사람/ 성가소비녀회 최 글라렛 수녀
▲ 볼리비아의 날 행사에서 볼리비아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최 글라렛(왼쪽) 수녀. 최 글라렛 수녀 제공
20여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주교였던 시절 특별히 아낀 한국인 수녀들이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플로레스 지역의 알바레스병원에서 일했던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다. 베르골료 주교(현 교황) 초청으로 알바레스병원에 해외 선교를 나선 수녀들은 스페인어를 몰랐고 늘 웃고만 다녔다. 베르골료 주교는 “이게 바로 복음 선포이며 봉헌 생활의 삶”이라고 기뻐했다.
성가소비녀회 최 글라렛(인천관구 성가쉼터 소임) 수녀를 만났다. 최 수녀는 2006년부터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에서 선교사로 살다 피부병이 생겨 지난해 9월 귀국했다. 최 수녀도 1년간 아르헨티나의 알바레스병원에서 원목 소임을 맡았다. 현 교황은 당시 추기경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교 주일 담화에서 봉헌 생활과 선교의 깊은 관계를 설명했다. 봉헌생활자들에게 선교는 어떤 의미이며 선교 현장에서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성가소비녀회는 예수 강생의 길을 따르는 작은 여종들의 수도공동체.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은 ‘예수 마리아 요셉’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몸으로 산다. 삶의 현장에서 성가정의 가난과 겸손 순명과 노동 침묵의 사도적 관상 생활을 하는 수도회다.
2006년 봉헌생활 10년 후 종신서원을 한 최 수녀는 침묵 속에 하느님께 청했다. ‘세상에서 가장 열악하고 가난한 곳으로 보내달라’고. 9년 동안의 해외선교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선교지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였다.
최 수녀는 아르헨티나의 알바레스병원에서 무의탁 환자들의 목욕과 빨래를 도맡고 차코에 있는 가난한 시골 공소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다. 아르헨티나에서의 3년 6개월 후 최 수녀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선교사로서 정착기에 접어들었어요. 선교지 상황이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생활이 편해졌고 여기서 안주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최 수녀는 아르헨티나보다 더 열악하고 절박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2009년 가을 최 수녀는 동료 김 아드리아나 수녀와 단둘이 볼리비아로 현지 답사를 떠났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의 파견이었다. 볼리비아의 주교들에게 편지를 써 성가소비녀회의 영성과 사명을 소개하며 수녀들이 필요한 곳이 있는지 답신을 부탁했다.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 버려야
성가소비녀회가 파견된 볼리비아의 첫 지역은 뿌에스또라는 곳이었다. 고온다습의 열대성 기후로 농업지대다. 첫 6개월간 최 수녀는 집집이 방문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더위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하고 모기에 몰린 자국으로 다리는 상처투성이였지만 기쁘게 받아들였다. 벌 소동으로 온몸이 벌로 뒤덮이는 고통도 맛봤다.
“예수님은 강생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아들이면서 평범하게 사셨지요. 요셉과 마리아는 드러냄 없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성가정을 이뤄 함께 살았습니다. 제가 수녀이지만 수녀라고 규정짓고 거리를 두면 함께 살 수 없어요. 저도 볼리비아에서 태어났다면 15살에 아이를 낳아 미혼모가 될 수 있지요. 15살 아이와 저는 서로 다를 게 없어요.”
최 수녀는 봉헌 생활과 선교 사이에 경계를 두면 복음 선포는 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복음 선포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복음 선포라는 말 자체를 내려놔야 한다고 했다.
“가난한 이웃들 삶에 동화돼 이들과 함께 살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힘든 게 많았지만 기뻤습니다. 불행한 마음이 더 크면 봉헌생활자로서 살 수 없어요. 내가 기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쁘지 않은데 선교를 할 수 없지요.”
소명 있어야 기쁨도 따라
인터뷰 중에 느낀 최 수녀는 쾌활하고 기쁨의 활력이 넘쳤다.
봉헌생활자로서 기쁨의 원천을 묻자 하느님이 부르셨다는 확신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르심에 대한 소명이 없으면 기쁨은 올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새터민들과 함께 사는 최 수녀는 “선교현장을 떠났지만 체험이 진했기에 더 그립다”면서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집집이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만큼 고향처럼 그리운 곳이 돼 버렸다”며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