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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트르 대구수녀원 100년- “궁핍했던 시절 수녀님은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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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찾은 백백합보육원 출신들

“수녀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잘살고 있지? 건강하고?”

대구 수녀원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가 열린 10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본원. 60~70대 여성 신자 10여 명이 이태정(마리뽈 89) 수녀를 발견하고 아이처럼 기뻐한다. 서로 악수를 하고 사진을 같이 찍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반가운 재회

“수녀님 전 손주가 4명이나 있어요.”

“아이고 그러면 나한테 증손주들이네! 애들 잘 키워.”

이 여성 신자들은 1950~60년 궁핍하고 배고팠던 시절 백합보육원에서 수녀들 손에서 자랐다. 가난한 형편으로 부모가 키울 수 없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사정으로 포대기에 쌓여 보육원 대문 놓였던 이들이다. 수녀들은 갈 곳 없는 생명을 품에 안았고 이 아이들은 젖먹이 때부터 10여 년간 수녀들의 보살핌을 받고 세상으로 나갔다.

수녀회는 100주년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보육원 출신들을 초대 이들이 행사에서 자신들을 키워준 수녀와 재회한 것이다.

“수녀원은 제게 친정이에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사랑을 몰랐는데 수녀님들이 성모님처럼 너무 좋았어요. 제가 보육원에서 생활하지 않았다면 신앙인으로 살지 않았을 거예요.”(안숙자 루치아 74)

1951년부터 40년간 보육원에서 지낸 시각장애인 김선희(루칠라 71)씨는 “수녀님들이 없었다면 세상이 두려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10살이 넘어서는 빨래와 주방일을 도우며 봉사자로 살았던 김씨는 “많을 때는 하루에도 5명이 넘는 아기가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며 “아기 6명을 앞뒤로 안고 업고 병원에 달려가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양육비 벌기 위해 가축 기르고 농사

당시 수녀들은 양육비를 벌기 위해 농사일을 하며 가축도 길러야 했다. 뽕나무를 키우며 누에를 쳐서 고치를 팔았다. 밭에는 목화를 심어 물레로 목화씨를 뽑았고 무병 베를 짜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혔다. 한글과 교리를 가르치는 건 물론 기도생활과 신앙교육에서만큼은 엄격했다.

보육원 아이들은 점점 증가해 한국전쟁 후에는 4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수용했다. 6살 미만 아이들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해외입양을 보낸 경우가 많았다. 보육원 아이들은 차츰 감소해 1988년부터 3년간 일시 보호소로 운영하다가 1991년 문을 닫았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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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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