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미사 봉헌 선배 수녀들 영적 유산 되새겨
▲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수녀원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대구에서 처음 청원기를 보낸 두 수녀가 당시 수련자 옷을 입고 밀이삭과 소금을 봉헌하기 위해 제단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이지혜 기자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관구장 서숙자 수녀)가 10일 대구 중구 남산로 수녀원 내 성당에서 대구수녀원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한 세기 동안 선배 수녀들이 쌓아온 영적 유산을 삶에서 드러낼 것을 다짐했다.
이문희(전임 대구대교구장) 대주교 주례로 봉헌된 기념 미사에는 수도회 회원을 비롯해 수도회가 운영했 던 백백합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과 수도회를 퇴회한 이들이 초대돼 100주년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대구에서 처음 청원기를 보낸 두 명의 수녀가 당시 수련자 옷을 입고 밀이삭과 소금을 봉헌했다. 밀이삭은 프랑스 러베빌본당에서 이어져 온 초창기 정신을 소금은 복음을 내면화한 수녀들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어 백백합보육원을 상징하는 백합과 성요셉시약소 대기실에 걸려있던 ‘성 요셉과 아기 예수’ 성화 수도회의 첫 선교지였던 중앙아프리카의 장식보가 차례로 봉헌됐다.
이문희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100년 전 이곳은 초가집과 논두렁길밖에 없던 곳인데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가 많고 아스팔트 위에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다니는 좋은 세상이 왔다”며 “좋은 세상이 와서 수녀님들이 할 일이 적어진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 대주교는 “사람들은 옛날보다 더 잘 살지만 속으로는 쪼들리고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찾기 어려워한다”면서 수녀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람들 안에 있을 것을 당부했다.
관구장 서숙자(루갈다) 수녀는 감사인사에서 “100년 동안 많은 어려움에도 오롯한 봉헌으로 수도회의 밑거름이 되어 주신 선배 수녀님들께 특별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며 “우리도 날마다 자신을 봉헌하며 새로운 100년을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기념미사 후에는 대구수녀원의 100년 역사를 담은 영상을 상영하고 백합어린이집 어린이들의 율동 공연과 함께 수련자 수녀들이 노래 솜씨를 발휘하며 친교를 나눴다.
이지혜 기자
100년 발자취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는 1696년 프랑스 샬트르교구의 작은 시골 마을 본당인 러베빌본당 주임 루이 쇼베 신부가 어린이와 환자를 돌보기 위해 창설했다. 당시 프랑스는 백년전쟁 종교전쟁 등 300여 년에 걸친 전쟁으로 사회경제적 상황이 악화하고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 갔다.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때는 1888년 네 명의 외국 선교사 수녀가 블랑(조선교구장) 주교의 요청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인천(제물포)을 통해 조선 땅을 밟았다.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되고 초대 교구장 드망즈(안세화) 주교가 수녀들을 요청함에 따라 1915년 10월 수녀 4명이 대구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계산동본당 김보록 신부가 교우 가정에서 양육하고 있던 아이 30명을 이 수녀들 품에 넘겨준 것이 백백합보육원의 시작이었다. 이어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약국 ‘성요셉시약소’가 문을 열었고 치료뿐 아니라 전염병을 앓는 성직자와 일반인들을 위한 진료소 역할도 함께 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시약소에 넘쳐나자 1934년 건물을 증축해 성요셉진료소를 운영했다. 1948년 한국 수녀원이 한국관구로 승격되고 초대 관구장에 베아트릭스 수녀가 임명되면서 대구 수녀원은 한국관구에 속하게 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수녀들은 양육하고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 제주도 등지로 피난길에 올랐으며 초대 관구장 베아트릭스 수녀는 ‘죽음의 행진’ 중 피살돼 순교했다.
대구 수녀원은 1967년 대구관구로 승격되면서 한국에는 서울과 대구 2개 관구가 생겼다. 교육 및 의료 사도직에 집중해온 대구관구는 점차 사도직 영역을 넓혀 본당 사목을 비롯해 페루 몽골 카자흐스탄 등 10여 개 나라에서 해외선교 활동도 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