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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만난 박용득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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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65년 만에 만난 혈육 앞에서 말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살아 있었구나!”라는 비명 같은 외침만이 터져나왔다. 눈물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육의 정을 나누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꿈같았다. 박용득(토마스 아퀴나스·81·서울 공릉동본당) 할아버지는 10월 20~22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누나 박룡순(83) 할머니를 상봉했다. 처음 대면하는 순간을 떠올린 그는 “1950년 9월 초 어느날 마지막으로 누나를 보고 65년이 흘렀지만 상봉장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누님 얼굴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골상이 배어나 직감적으로 누나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 65년 세월동안 박 할아버지에게 남겨진 누나의 흔적은 단 2장의 빛바랜 흑백 사진뿐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1930년대 서울 신설동 집 툇마루에서 형 박용운(86) 할아버지 누나 박룡순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과 ‘1944년 종암초교 체육대회 전교대표 남녀계주. 좌에서 두 번째 나 네 번째 누나’라는 기록이 적힌 또 한 장의 사진이다.

박 할아버지는 “사진 속 어릴 적 모습처럼 1950년 당시 18살이었던 누나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도 얼굴에 젖살이 통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시 만난 누나 얼굴에 65년 세월이 묻어나 그 옛날 통통했던 누나의 정취를 찾기는 힘들었다”고 아쉬워했다.

박룡순 할머니는 한국전쟁 중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운영하던 간호전문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전쟁이 나자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병간호를 하느라 전쟁 발발 두달여 만인 9월 초에야 서울 신설동 집에 들를 수 있었다. 끼니를 굶는 동생들이 안쓰러워 “누나 집에 다시 올 때 쌀 가져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섰다. 동생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박 할머니나 동생들 누구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서울은 폭격 아래 놓였다. 박 할아버지가 살던 집도 포탄에 무너졌다. 기다리던 누나가 찾아올 집이 없어진 것이다. 박 할아버지는 “누나를 찾을 생각도 못했고 폭격에 죽어 길거리 어딘가에 누나의 시체가 구르고 있을 것이라고만 여겼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1961년 결혼 후 가톨릭 신앙을 갖게 돼 공릉동본당에서 사목위원까지 지냈지만 누나는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누나를 위해 연미사 한 번 봉헌한 적이 없었다.

올 9월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북녘 땅에 있을지도 모를 누나를 찾았다. 기적같이 사흘 후 북한에 누나가 살아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 더욱 놀랍고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죽은 줄로만 여겼던 누나가 이북에서 오랜 세월 박 할아버지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상봉 첫째 날 나오지 않던 눈물이 둘째 날부터 쏟아졌다. 박 할아버지는 “1945년 막내 동생을 낳고 회복하지 못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형과 누나 저 셋이 눈을 못 감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던 때를 누나와 회고했다”며 “어머니가 선종하실 때나 누나를 65년 만에 만날 때나 하느님께서 크나큰 축복과 은총으로 함께해주셨음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누나 나 만나고 싶으면 서울 우리집으로 와. 나도 누나 보고 싶으면 평양 누나 집으로 갈게.”

오열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는 박 할아버지는 누나와 상봉 후 하느님께서 평화통일을 이뤄주시기를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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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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