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광희문과 천주교 박해」 광희문 관련 자료집 첫 출간… 순교사 종합적 정리
▲ 조선시대 한양도성 사소문 중 남소문인 광희문 전경. 평화신문 자료사진
시체를 내다 버리던 시구문(屍口門). 2016년 서울 한복판에는 이 시구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 시대 한양도성 사소문 중 남소문인 ‘광희문’(光喜門)이다. 200여 년 전 천주교가 박해받던 때 김임이ㆍ우술임ㆍ정철염 등 병오박해(1846년) 순교 성인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도 광희문 밖에 버려지거나 묻혔다.
이런 광희문의 역사와 의미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최근 자료집 「서울 한양도성 광희문과 천주교 박해」(비매품)를 출간하면서다. 광희문 관련 순교사 및 시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료집은 △조선 시대 한양도성과 사소문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와 광희문 △천주교 사적지로 거듭나다 등 총 3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에서는 한양도성 사소문이 축조된 배경과 의미부터 천주교 주요 박해와 광희문의 관계 관련 순교자 위치 현황까지 교회사적지인 광희문을 역사적 흐름 안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광희문과 관련된 조선왕조실록과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 1920년대부터 보도된 광희문 관련 기사 등도 별도로 첨부돼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 편하다.
광희문 성지 담당 한정관 신부는 간행사를 통해 “광희문은 박해 시대 순교자들의 주검으로 성스러운 장소가 되고 본 현판의 의미대로 천국으로 개선하는 영광의 문으로 성화 됐다”며 “성지의 역사가 담긴 자료집을 발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원형이 잘 보존된 유적지 중 하나인 광희문은 지난해 2월부터 24시간 개방됐다. 이후 서울대교구는 같은 해 8월 광희문 앞에 순교현양관을 마련 신자들이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