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만의 만남… 문답으로 알아보는 동방 정교회
▲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사도 베드로(왼쪽)와 동방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상봉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콘화. 동서방 교회의 일치 염원이 담겨 있는 성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의 12일 첫 회동에 ‘1000년 만의 상봉’이란 수식어가 붙으면서 동방 정교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가톨릭과 쌍둥이라고 불리는 동방 정교회에 대해 알아본다.
Q: 동방 정교회란
A: 1054년 교회 대분열 때 서방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동로마제국 지역을 비롯한 동방의 모든 교회를 말한다. 4세기 이래로 지중해 주변 그리스도교 세계는 로마ㆍ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ㆍ알렉산드리아(이집트)ㆍ안티오키아(시리아)ㆍ예루살렘(이스라엘) 등 5개 도시의 총대주교(Patriarch)들이 주도했다.
그러나 안티오키아ㆍ예루살렘ㆍ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 세계로 편입된 이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만이 양대 축으로 존재했다. 그러다 찬란한 비잔티움 문화를 꽃피웠던 콘스탄티노플마저 1453년 오스만튀르크(이슬람)에 의해 함락되면서 입지가 더 축소됐다. 이후 러시아가 ‘제3의 로마’를 표방하고 동방 정교회 맹주로 나섰다.
Q: 동방과 서방 교회는 언제 왜 갈라졌나
A: 분열의 씨앗은 이미 로마제국 시대에 뿌려졌다고 봐야 한다. 395년 동(그리스어 문화권)과 서(라틴어 문화권)로 갈라지기 전부터 언어적 문화적으로 이질감을 보였다. 6세기 말부터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발칸반도에 진출하고 이슬람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교류가 점점 어려워졌다.
가시적 균열은 8세기 성화상 파괴 논쟁에서 비롯됐다. 비잔티움 황제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성화상을 파괴하자 교황이 이를 정죄하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필리오퀘(filioque ‘아들로부터’) 논쟁이 있다. 서방 교회는 성령이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나온다고 믿었지만 동방 교회는 성령은 오직 성부로부터만 나온다고 주장했다. 성찬식 빵에 누룩을 넣고 빼는 문제 불가리아 선교 주도권 로마 교황의 수위권 인정 등을 둘러싸고도 마찰을 빚었다.
나아가 11세기 비잔티움 영토였던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한 프랑스 북부 노르만족이 그곳에서 서방교회 관습을 강요하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관할 구역에 있는 서방 교회를 폐쇄하는 조치로 맞섰다.
사태 수습을 위해 파견된 교황 사절단과 총대주교 사이에 대화가 결렬되자 교황 사절들은 하기아 소피아성당 제단에 총대주교 파문 교서를 던져놓고 떠났다. 총대주교도 상대방을 파문으로 것으로 대응하면서 분열을 기정사실화 했다. 설상가상으로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바람에 사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Q: 교리와 예식 차이는
A: 동방 정교회도 일곱 성사를 보존하고 있다. 주교와 수도원 제도 성인 공경과 성호 긋기 전통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나 교황 수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 서양 음력이라 할 수 있는 율리우스력을 쓰는 교회가 많아 예수 부활 대축일 등 주요 전례력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성탄 대축일은 1월 7일. 또 무반주로 찬송하고 회중석 없이 서서 예식을 거행한다.
Q: 동방 정교회 분포와 조직은
A: 러시아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정교회가 대표적이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 수는 1억 6000만 명으로 세계 동방 정교회 신자 2억 5000만 명의 절반이 넘는다. 가톨릭처럼 교황을 정점으로 한 통일된 조직은 갖추고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게 ‘모든 교회의 총대주교(Ecumenical Patriarch)’라는 칭호를 붙인다.
이집트 콥트교회나 아르메니아교회는 동방 정교회와는 다른 별개 조직으로 봐야 한다. 시리아 야코부스교회 에티오피아교회 인도 말라바르교회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토착화된 이런 교회들은 사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고 독자적 전례를 갖고 있다. 이들 교회는 흔히 오리엔트 정교회 또는 동방 독립교회라고 불린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