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내당본당 문혜란씨 봉사 ‘지루한 유아방’이 ‘재밌는 교육터’로 변신
▲ 대구대교구 내당성당의 유아방 아이들이 문혜란 할머니가 들려주는 ‘복음 동화’를 듣고 있다. 서시선 명예기자
2월 28일 교중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대구대교구 내당성당(주임 박강희 신부) 유아방.
주임 신부의 강론이 시작되자 10여 명의 아이가 한 할머니를 둘러싸고 모여 앉았다. 할머니 손에는 그림이 들려 있다. 아이들은 ‘복음 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를 한번 봤다가 그림을 번갈아 가며 뚫어지게 본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포도밭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에는 왜 3년 동안 열매가 맺지 않았을까요?”
할머니가 묻자 박성우(안토니오 7)군이 대답했다.
“음…. 물과 햇빛을 안 줘서요.”
“그럼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잘 돌보면 열매가 열릴까요?” (할머니)
“네 햇빛은 하느님이 주실 거고 물과 사랑을 주면 돼요.”
본당 신부 권유로 1년 3개월째
유아방 아이들에게 복음 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는 바로 문혜란(아녜스 68)씨. 전임 주임 신부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벌써 1년 3개월이나 됐다.
“처음엔 망설이다가 ‘하다가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걱정될 때마다 ‘할매’가 귀하게 쓰임 받는 일이라고 저 자신을 응원했지요.”
문 할머니는 복음을 읽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복음 동화를 들려줄지 고민한다. 복음과 강론을 수십 번 읽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동화를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 복음 해설을 찾아보고 주일학교 교재와 인터넷 자료를 통해 그림 자료를 찾는다. 복음이 너무 어려울 때는 구약의 창세기나 일반 동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주일이 되면 간식과 복음 동화 그림을 넣은 묵직한 가방을 들고 성당으로 향한다. 미사 시작 30분 전 성당에 도착해 전기를 꽂아 바닥을 데워놓는다. 그래야 아이들이 올 때쯤 바닥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옷을 벗어놓고 맨발로 뛰어다닌다.
유아방은 겨우 젖을 뗀 아기부터 7살까지 미취학 아동들의 놀이터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지루한 미사 시간을 견뎌내는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친할머니’ 같은 존재다.
문 할머니가 복음 동화를 읽기 시작하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나 할머니 곁에 모인다. 할머니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복음 이야기에 조용히 집중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예수님에 대해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질문할 기회도 준다.
성당에서의 행복한 기억 심어주기
“시작하고 보니 누군가는 해야 할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주일학교와 달리 유아방 아이들은 미사 중 관심 밖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미사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존재로 야단치기 일쑤고요. 아이들에게 성당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심어주는 일은 어른들 몫입니다.”
문 할머니의 봉사는 많은 이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얻고 있다. 부모들은 할머니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주임 신부는 본당 예산으로 간식비도 지원해 주고 있다.
문 할머니는 “성당에는 노인이 많고 아이들이 점점 줄어든다”면서 “아무리 신자가 많고 주일 헌금이 많아도 아이들이 없는 성당은 공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당마다 할머니들이 유아방 봉사를 맡아 주면 세대 간 조화를 이루고 참 좋겠다”고 제안하면서 “나이 든 신자라도 ‘잉여’가 아닌 하느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면 좋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서시선 명예기자 sisu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