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퀴퀴롱 마을에서 역사학자 르네 볼로씨가 검증
▲ 벽돌로 메운 자리가 페레올 주교의 생가 입구 흔적이다. 이곳을 발견한 역사학자 르네 볼로씨가 집터 앞에서 페레올 주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슬기 기자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Ferreol 1808~1853) 주교의 생가터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페레올 주교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아비뇽 퀴퀴롱(Cucuron)의 역사학자 르네 볼로(Rene Volot)씨는 4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사료 조사와 고증을 통해 최근 페레올 주교가 태어난 집터를 찾았다”고 밝혔다.
볼로씨는 최근 퀴퀴롱 마을 내 성당로부터 약 300m 떨어진 골목길 안쪽에서 페레올 주교의 생가 입구 흔적을 발견했다. 현재 생가 건물에는 마을 주민이 거주 중이며 벽돌로 메운 입구 자리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퀴퀴롱은 페레올 주교가 출생 후 유년시절을 보낸 지방이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이 주교가 세례받은 성당 등을 보존해왔지만 태어난 집터를 찾아낸 것은 볼로씨가 처음이다.
볼로씨는 “페레올 주교는 태어난 때부터 소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며 “당시 건물은 주교의 아버지가 대를 이어 운영하던 정육점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페레올 주교의 출생과 성장 조선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등을 연구해 2014년 관련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페레올 주교는 1838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 기해박해 때 순교한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에 이어 1843년 조선교구장이 됐다. 이후 1845년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조선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는 전교 활동을 펼치며 순교자들의 전기 수집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교우촌 방문 선교사 영입 등 과중한 업무로 인해 병을 얻어 1853년 45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프랑스 아비뇽=백슬기 기자 jda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