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미사일 발사와 대북 제제 … 북한은 지금
남북이 ‘신냉전’에 접어들었다.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2270호 채택에 이어 한ㆍ미 연합군사훈련과 이를 빌미로 한 북한의 잇따른 핵 선제타격 위협과 미사일 발사 시위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같은 대북 제재와 군사적 긴장 고조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북녘 주민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취약 계층이다. 이에 최근 대북 제재에 따른 북한 동향 특히 식량 사정을 긴급 점검한다.
▲ 2015년 식량농업기구 ( FAO) 북한 전역 가뭄 실태 ▲ 지난 2010년 9월 가톨릭농민회 등으로 구성된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통일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가 개성을 경유 신의주 수해 지역에 통일쌀 203t을 보내며 환송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북 장마당 경제 타격 불가피
“9일에 저희한테 연락이 왔는데 랴오닝성 단둥을 통해 북에 반입되는 밀가루나 옥수수 비료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핵실험 전용 우려가 있는 대규모 정밀기계 설비나 부품은 아예 들어가지 못합니다.”
단둥에서 활동하는 국제 대북 지원 기구 실무자들이 연이어 이 같은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3일 중국이 UN 대북 제재 결의안 전면 이행에 돌입 북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에 전수조사를 하면서 단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두 나라 국경 지역 반경 20㎞ 이내 거주자라면 누구나 하루 8000위안(140만여 원) 이하 상품을 관세 없이 사고팔 수 있는 자유무역지대가 한적하다.
김정은 정권이 주력해온 ‘장마당 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당장 북 전역에 400여 개나 되는 장마당에서 부유층이나 중간매매상들이 전시 식량 사재기에 나서면서 가격이 폭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식량과 물자가 반으로 줄어 장마당에 내다 팔 물건이 귀해지자 물건 대신 ‘가축을 파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당과 기관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재 여파가 미칠 3개월 또는 6개월 뒤가 실은 더 문제다. 그때쯤이면 일선 장마당에도 공급이 끊겨 대규모 식량과 물량 부족 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정부교구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 변진흥(야고보) 연구위원은 “생필품은 예외라고 하지만 외부 반입이 제재를 받는 데다 자체적 공급량이 소진되고 나면 상당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재 자체야 북 집권층을 겨냥한 것이지만 실질적 충격은 북한 주민들이 받는다고 봤을 때 복음적이지 못한 결과가 나올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이에 그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최소한의 문은 열어놓고 북한과의 대화 여지를 남겨둬야 할 것 이라고 주문했다.
인도적 지원은 대북 제재에서 제외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북 식량 사정은 여전히 어렵다. 올해로 김정은 정권 출범 5년 차를 맞는 북한의 식량 소요량은 연간 650만t. 북 주민 1인당 하루 두 끼를 기준으로 한 최소 소요량만도 549만t에 달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연간 소요량을 쌀 744만t 옥수수 354만t 밀 131만t으로 추산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절반도 못 미친다. 2014/15 양곡 연도의 북 곡물 공급량은 최소 소요량에 견줘 41만t 이상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주먹구구식 추정이 아니라 북한 전역 곳곳을 샅샅이 살핀 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추정치다.
GS J 인스티튜트 북한ㆍ동북아연구원 권태진 원장도 이 같은 추정에 대체로 동의한다. 권 원장이 최근 발표한 ‘2015년 북한 가뭄 실태와 식량 상황’에 따르면 북의 식량난은 최소 소요량 대비 41∼43만 5000t 정상적 소요량 대비 100만t가량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로 북한이 한층 가혹한 ‘춘궁기’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FAO 기준으로 2014/15 양곡 연도에만 밀가루 11만 8000t과 옥수수 10만 9000t 쌀 9만 5000t을 반입한 북한의 수입 물량이 반으로 줄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종이나 종교 정치와 관계없이 가장 취약한 계층을 최우선으로 지원해 온 국제 카리타스는 올해도 긴급구호와 의료ㆍ산림 지원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꾸준히 지속할 계획이다.
(재)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사무국장 이종건 신부는 “유엔 대북 제재로 북 곡물시장 사정이나 주민들의 삶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데 다들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면서 “다만 유엔도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만은 제재를 하지 않았기에 국제 카리타스에서도 전 세계 165개 회원기구의 재정 지출을 받아 올해도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수록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야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북의 영ㆍ유아나 임산부 장애인 노인 등 북의 취약계층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도 북 주민들의 기아사태를 우려하며 인도적 지원을 제재 항목에서 뺐다.
최근 조ㆍ중 접경 지역을 둘러보고 13일 귀국한 한국 교회 대북 지원 한 관계자는 “현지에선 북한이 앞으로 6개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규모 기아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대북 지원을 차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정세덕 신부는 “최근 들어 급격히 북 식량 수급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해 북의 취약 계층을 직접 돕고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북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이은형 신부도 “남북의 갈등이 고조되고 어려울 때일수록 교회가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운동과 함께 대북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신부는 “중국도 북 주민들의 고통을 우려하는데 하물며 통일의 당사자인 우리가 북녘 형제들의 굶주림과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