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피선 3주년… 아르헨티나 출신 예수회원 오티스 신부가 말하는 베르골료
▲ 13일로 피선 3주년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현장 사목자다. 【바티칸=CNS】
프란치스코 교황이 13일 피선 3주년을 맞았다.
3년 전 그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좋은 저녁입니다”하며 손을 흔들 때만 해도 아르헨티나에서 온 77세 베르골료 추기경이 지금처럼 활력 넘치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교회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그는 어떤 목자인가. 때마침 베르골료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예수회원 기예르모 오티스(56) 신부가 입을 열었다. 오티스 신부는 17살 때 베르골료 신부를 찾아가 성소 상담을 하고 그의 밑에서 수련기를 보내며 공부했다. 지금은 바티칸 라디오에서 일한다. 알 것 모를 것 다 아는 사이다.
그는 「바티칸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교황 말씀의 80는 실생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요즘 무슨 말씀을 하시면 옛날에 있었던 어떤 상황과 바로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제관 같은 층에 살 때 노트를 빼놓고 나와 다시 가지러 들어갔더니 신부님이 공동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변기를 닦고 있었다”며 “그런 자세로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을 그때 처음 봤다”고 말했다.
-베르골료를 안지 얼마나 됐나
“1977년 그분이 관구장일 때 처음 만났다. ‘예수회원이 되고 싶다’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듣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다. 한참 후에 ‘좋아. 6개월 후에도 같은 생각인지 지켜보겠네!’라고 하셨다. 1981년 신학원에 들어갔는데 그분이 성요셉신학대학 학장을 하고 계셨다. 수련 첫날부터 마구간으로 쓰던 건물을 성당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불려 나갔다. 그분은 나를 후견하는 동안 계속 거리로 내보내셨다.”
-학장 베르골료는 어떤 사람이었나. 힘들고 궂은 일만 시켰다는 게 사실인가.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학생은 많은데 도움받을 곳이 없었다. 한창 먹성 좋은 젊은이들이라 식비 대기도 벅찼을 것이다. 어느 날 신부님이 소와 돼지 양을 한 쌍씩 사오셔서 우리는 몇 년간 가축을 길러야 했다. 신부님이 돼지 씻기는 시범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 녀석들 씻길 때면 우리는 아버지 집을 뛰쳐나가 돼지를 치며 연명한 탕자(루카 15장) 꼴이었다. 신부님과 함께 대형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면서 영성에 관해 대화하곤 했다. 신부님은 이론과 실제를 구분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를 늘 어떤 상황으로 밀어 넣으셨다. 그 바람에 희생을 치러야 뭔가를 배울 수 있었다.”
-그게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는 훈련이었나.
“청빈 서원을 하는 우리에게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청빈하게 살려면 노동을 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은 일해야 하고 땀 흘려야 한다고. 신학원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60㎞ 떨어져 있는데 교통이 안 좋아 왕복 4시간 걸렸다. 그 고된 길이 현실적 감각을 키워줬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담요를 얻으려고 신학원 문을 두드렸다. 추워 보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분이 없었다. 그러자 신부님이 자신의 담요를 들고 나와 건넸다. 나중에 신부님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눠야지 남는 걸 나누는 게 아니라고 그 여인이 가르쳐 주었다’고 하셨다.”
-다른 기억나는 것은
“신부님은 1985년 학장직을 마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다른 신학원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셨다. 사제관 같은 층에 살았다. 신부님은 그때 아무런 직책도 맡지 않으셨다. 어느 날 아침 방에 놔둔 노트를 깜빡 잊고 나왔다. 사제관이 텅 비어 있을 시간이었다. 그걸 가지러 건물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복도 중간에 있는 공동 화장실에서 신부님이 무릎을 꿇고 변기를 닦는 걸 목격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안다. 자기를 앞세우지 않는다. 이론가도 아니다. 직접 해보고 거기서 배운다. 또 하느님 백성 안에서 배우는 분이다.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씀하셨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