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장에서 물러나는 김지석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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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석(왼쪽) 주교가 1991년 주교품을 받은 뒤 초대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함께 축하식에 참석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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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석 주교는 “그동안 정말 행복했다”며 모든 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임영선 기자 |
6일 원주교구청에서 만난 제2대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는 “정말 행복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신자들이 많이 사랑해 줘서 행복했고, 착한 신부님들과 함께해서 행복했다고 했다.
1990년 주교로 임명, 1993년 3월 원주교구장에 착좌한 김 주교는 사반세기를 원주교구민들의 목자로 살았다.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는 김 주교는 “25년이 꽤 긴 시간인데, 지나고 보니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교구 신부님들께서 워낙 잘 도와주셨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교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서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다.
원주에서 나고 자라 원동주교좌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사제품을 받은 후 원동본당 보좌로 사제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교가 된 후에는 원동성당 앞 교구청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김 주교는 “고향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다. 나는 인간적으로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김 주교의 사목 표어는 “항상 기뻐하라”(1테살 5,16)이다.
그는 “늘 사목 표어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교가 되기 전부터 그 성구를 좋아했어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게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죠. 주교가 된 후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말고 기쁘게 살자고 다짐했어요. 화낸다고 해결될 일은 없거든요.”
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사제단의 일치를 늘 강조했다. 사제단이 먼저 일치해야 신자들도 그 모습을 본받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주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주교가 돼, 두렵기도 하고 ‘어떻게 교구를 이끌어나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선배 신부님들이 앞장서서 저를 따라주셔서 모든 사제가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주교구는 작은 교구다. 관할 구역 내 인구는 15개 교구(군종교구 제외) 중 세 번째로 적고, 신자 수는 두 번째로 적다. 재정도 열악한 편이다.
“다른 교구와 비교하면 여러 가지로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저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어요. 가난하다고 하지만 다른 교구에서 밥 먹는데, 우리는 죽 먹는 건 아니잖아요? (웃음) 다 상대적인 것이고 그 상황 안에서 잘 살아가면 돼요. 우리 교구는 어려운 것보다는 자랑할 것밖에 없어요.”
후임 조규만 주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엊그제 새로 주교가 된 분도 아니고, 주교 생활을 10년이나 한 노련한 분이기에 내가 특별히 조언할 게 없다”면서 “이곳에서 살아가시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시게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주교는 퇴임 후 원주에 있는 은퇴 사제관에서 머물 예정이다. 9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사제관인데 김 주교가 첫 입주자다. 요즘 짐(주로 책)을 정리하고 있다는 김 주교는 아직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건 없다고 했다.
김 주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도 읽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지낼 것”이라며 “그동안 저를 사랑해 준 신자들과 신부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940년 원주에서 태어난 김 주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원동본당 보좌였던 양대석(알로이시오, 1922~1994) 신부 권유로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가톨릭대 수료 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유학하고 1968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90년 11월 원주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돼 이듬해 1월 주교품을 받고, 1993년 3월 원주교구장직을 계승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주교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다. 임영선 기자 hellol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