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아르메니아 사목 방문… 아라랏산 향해 ‘희망의 전령’ 비둘기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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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과 카레킨 2세 총대주교가 6월 26일 ‘희망과 평화’를 염원하며 아라랏산을 향해 비둘기 한 쌍을 날려 보내고 있다. 【아르메니아=C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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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문 이틀 째인 6월 25일 수도 예레반의 공화국 광장에서 열리는 교회일치 모임과 기도회에 입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카레킨 2세 총대주교. 【아르메니아=CNS】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세기의 대학살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캅카스 지방의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렸다.
6월 24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아르메니아 사목 방문에 나선 교황은 26일 아르메니아의 최대 성지인 코르 비랍(Khor Virap) 수도원에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카레킨 2세 총대주교와 함께 아라랏산을 향해 비둘기 한 쌍을 날리며 ‘희망의 전령’이 되어 주었다.
아라랏산은 대홍수 때 노아가 방주에 몸을 싣고 도착해 물이 다 빠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 보낸 곳(창세 8장 참조)으로 알려져 있다. 그 비둘기가 싱싱한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와 노아의 방주에 희망을 전했듯, 교황은 위로와 희망을 갈망하는 아르메니아에 “미래의 희망이자 삶의 길을 밝히는 불빛은 바로 신앙”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대학살의 고통을 위로하고,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과 일치를 이루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교황은 방문 첫날인 24일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르메니아를 “가장 비극적인 순간(1915년 대학살)에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능력으로 새롭게 일어선 민족”이라고 칭송하고 신앙의 깊은 뿌리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어 “대학살의 고통을 이겨낸 아르메니아의 힘은 신앙에 있다”고 강조하고 “어려움을 극복해낸 경험을 토대로 분쟁과 갈등, 고통이 혼재하는 국제사회에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25일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관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인류가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것을 잊지 않기를” 염원하는 글을 방명록에 적었다. 이 자리에는 대학살 기간 중 비오 11세 교황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난민의 후손들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교황은 특히 미사 강론과 연설 때마다 아르메니아의 수호자 나렉의 성 그레고리오(257~331)의 삶과 영적 유산을 거듭 상기시켰다. 성 그레고리오는 박해 시대에 14년 동안 우물에 갇혀 살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다.
교황은 25일 제2의 도시 규므리에서 야외 미사를 거행하면서 “자비의 빛은 분노의 어둠에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성인의 말씀을 인용, “성인은 고통과 상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가두지 말고 주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으로 마음을 열라고 재촉한다”고 역설했다.
성직자들과 함께 거행한 거룩한 전례에서는 “여러분의 스승이신 그레고리오 성인이 이 땅을 비추었던 그 신앙의 빛에 용서와 화해의 빛이 일치되기를 바란다”며 종교 지도자들이 용서와 화해의 다리가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전신인 터키 정부가 대학살을 인종 말살 정책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지칭하는 데 반발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에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의 의도는 상처를 기억하면서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소탈하고 격의 없는 행보로 아르메니아인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교황 특유의 카리스마에 대해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은 방문지마다 항상 그곳 국민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며 “문화적으로 거리가 있는 (2014년) 한국 방문이 그 예다”고 말했다.
교황은 오는 9월 30일에도 아르메니아 인접국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를 방문, 캅카스 지방 3개국 교회와 일치하면서 그곳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여정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교황은 24일 아르메니아행 기내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수행기자들 질문에 “영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영국은 유럽 대륙의 행복과 공존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