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모 신부 시복 2주년 특별 기획전, 현지서 성황리에 막 내려
 |
| ▲ 중국 신자들이 샤오헝탕성당에서 열린 특별전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를 관람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제공 |
복자 주문모 신부 시복 2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가 6월 30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주문모 신부 고향 본당인 쑤저우교구 샤오헝탕본당(주임 양타오셔우 신부)은 5월 24일~6월 30일 성당에서 전시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를 열고, 17~19세기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를 통해 발전한 천주교회사의 흐름을 확인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자문과 지원을 받아 열린 이번 전시에는 한ㆍ중 양국 천주교 신앙의 토대가 된 서양 문물과 서학 서적 등 천주교 관련 유물 100여 점이 전시됐다.
중국 각지서 신자들 찾아와 관람
중국 장쑤성 내 쿤산ㆍ난퉁, 상해, 저장성의 원저우ㆍ닝보, 산둥성ㆍ허베이성 등 여러 지역의 신자 5000여 명이 전시를 관람했다. 특히 쑤저우와 2800㎞ 떨어진 내몽골자치구 신자들은 버스 4대를 빌려 30시간 동안 달려 도착해 전시 유물을 감상했다. 내몽골자치구 영하지구의 고 신부는 “전능하신 천주님, 주문모 신부와 김대건 성인의 전구로 한ㆍ중 교회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도한다”며 소망했다.
관람객들은 “문화대혁명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중국의 신자들에게 감사한 전시”라고 입을 모았다. 허베이성 스자좡의 사 신부는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에도 참석했다”며 “전시 내용이 매우 감동적이다. 중국에 이 같은 유물이 없어 안타깝다”고 심정을 전했다.
평화신문<제1366호 5월 29일 자 보도> 등 국내 언론을 통해 전시가 소개되면서 중국 내 한인 신자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상하이ㆍ쑤저우ㆍ난징한인본당 등의 신자 등 280여 명이 전시를 관람했다. 서울주보에 소개된 글을 보고 중국 출장 중에 성당 위치를 사람들에게 물어 어렵게 찾아온 한국인 신자도 있었다. 한 쑤저우 한인본당 신자는 “중국 생활 4년 만에 종교적인 내용의 전시를 접한 것은 처음”이라며 전시가 성사된 것을 놀랍게 여기기도 했다.
서울 순교자현양위와 6개월간 준비
샤오헝탕본당과 한국 교회의 인연은 1여 년 전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중국 쑤저우교구장 쉬홍건 주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주문모 신부의 유해와 유품을 요청했다. 하지만 유해가 남아있지 않은 관계로 서울대교구는 주 신부의 순교지인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샤오헝탕본당에 전달했다. 이후 샤오헝탕본당은 한ㆍ중 양국 천주교회사의 전래 과정과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협약을 맺고 약 6개월간 전시를 준비했다.
중국은 1966~1976년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이 혁명정신 재건을 위해 실시한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종교를 비롯한 문화 영역 전반에 대해 국가 차원의 제재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선교 사제 양성과 파견 등 제한된 수준에서만 중국 선교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특별전은 전시라는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사람들을 초대하고 한ㆍ중 양국 신앙의 역사를 알리는 자리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파견된 첫 번째 외국인 선교 사제로, 1794년 조선에 입국했다. 역관 최인길 집에서 머물며 미사를 거행하고 성사를 집전한 주 신부는 을묘박해(1795년)를 피해 여성회장 강완숙(골룸바)의 집으로 피신했다가 신유박해(1801년) 때 체포되고 말았다. 같은 해 5월 13일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주 신부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