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악,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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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25일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관에 찾아가 희생자들 영령에 헌화하고 있다. 【아르메니아=C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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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아르메니아 쉐사란 마을에서 촬영한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 사진. 【아르메니아 대학살 기념관】 |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터키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할 것을 알면서도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오스만 튀르크(현 터키) 통치자들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한 참극을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지칭했다. 지난 6월 24일 아르메니아 대통령궁 연설에서다.
터키 외무부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역사가들이 희생자 수를 부풀린 데다 우리도 충돌 과정에서 피해를 봤다”며 “교황의 편견이 터키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교황의 그런 인식은 캅카스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지난해 4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한 대학살 100주년 희생자 추모 미사에서도 똑같은 단어를 썼다. 그때 터키 정부는 항의 표시로 바티칸 주재 대사를 자국으로 소환했다.
# 터키 반발에도 소신 굽히지 않아
아르메니아 학살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던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틈을 이용해 오스만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봉기했다. 그러자 오스만은 봉기를 무력화하고, 남진하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가 합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들을 강제 징집해 집단 사살하거나 노역장으로 몰아넣었다. 사막으로 추방된 부녀자와 노약자는 대부분 기근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아르메니아는 희생자 수가 150만 명, 터키는 50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야만의 역사에는 두 나라 사이의 해묵은 종교적 갈등이 깔려 있다. 301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최초의 국가 아르메니아는 인접한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수난을 당할 때마다 신앙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냈다.
‘민족(인종) 대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는 인류 사회가 단죄하는 범죄 중의 범죄다. 가해자 입장에서도 어떤 잔악 행위에 제노사이드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건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다. 독일이 아직도 유다인 대학살의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터키 정부는 이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교황의 24일 연설 원고에는 애초 제노사이드란 단어가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20세기의 첫 제노사이드라고 불리는” 정도의 표현 수위였다. 15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했던 표현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에둘러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의 의도는 상처를 기억하면서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수행 기자들에게 진의를 부연 설명해야 했다.
교황은 사목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설명했다.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불렀다.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그들(터키)은 항의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항의 때문에 같은 사건에 다른 단어를 쓰면 낯설게 들릴 것이다. 나는 다른 무엇을 강조하려고 했다.”
교황은 이어 “지난 세기에 3번의 제노사이드가 있었다는 게 내 소신”이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는 오스만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두 번째는 나치의 유다인 대학살, 나머지 하나는 스탈린의 인민 대숙청이다. 이 모든 비극은 1, 2차 세계대전의 연속 선상에서 일어났다.”
# 연합국은 왜 거대한 악을 방관했나
교황은 강조하려고 했던 ‘다른 무엇’에 대해서도 말했다. 서방 강대국으로서는 새삼스레 들춰내고 싶지 않은 얘기다. 진실을 파헤치면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이런 비극을 다른 각도에서 봤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어떤 강대국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연결되는 철로 사진(항공사진)을 다 확보했다. 철로를 폭격할 능력이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상황 속에서 아르메니아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2차 세계대전 상황 속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문제는 어디 있는가? 얄타회담(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열린 승전 연합국 회담)에서 누구도 그것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는 수용소에서 대학살이 자행되는 것을 알면서도 연합군이 군사 작전을 우선하느라 그 거대한 악을 방치한 데 대한 비판이다. 반유다주의가 팽배한 연합군 수뇌부가 묵인했다는 설도 있다. 얄타회담 건은 연합국이 악을 심판하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패전국 처리 과정에서 자국 몫을 챙기느라 옥신각신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이 대화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 앞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들(강대국)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