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운 신부의 영성
여름철은 무더위와 장마로 사람을 힘겹게 하지만, 또한 휴가와 여행에 대한 기대로 흐뭇해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설레며 여행길을 오를 때 책은 빠질 수 없는 동반자인데요, 여름에는 특히 추리소설이 제격입니다. 더운 날씨에 무거운 주제의 책이 버거울 때, 긴장과 짜릿함이 있고, 지적 즐거움도 주는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긴 시간 여행길이나, 지겨운 열대야도 잊게 됩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주로 북유럽이나 일본의 추리소설들이 각광을 받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추리소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분야로 자라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들이었습니다. 탐정의 대명사가 된 셜록 홈즈를 창조한 코난 도일이나, 미스 마플과 포와로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추리소설의 명작을 남긴 아가사 크리스티가 모두 영국 출신이지요. 이러한 영국의 추리소설의 계보에서 매우 독특하면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중요한 가톨릭 사상가인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K.Chesterton, 1874~1936)입니다. 체스터튼은 영국 에섹스 주의 한 시골 본당 주임신부인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수십 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썼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해가는 추리소설로서의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할뿐더러 체스터튼 특유의 풍부한 문체와 이미지, 사변, 역설을 담고 있는 문학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입니다.
브라운 신부를 비롯한 체스터튼의 작품이 지닌 수준 높은 문학성은 동료 추리소설 작가나 애독자만이 아니라 많은 위대한 작가들에게도 경탄을 자아냈는데, 20세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위대한 작가인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역시 체스터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그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로서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사건의 중심인물이기도 한 도서관 사서를 맡은 시각장애인 수사의 이름을 호르헤라고 명명하기도 했었지요.
보르헤스는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단편들을 모은 선집을 편집하고 각 권마다 자신의 머리말을 달아서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유명한 기획을 내놓았는데 그중에 브라운 신부의 이야기 몇 편을 묶은 「아폴로의 눈」도 있습니다.(G.K. 체스터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편집 및 서문, 최재경 옮김, 바다출판사) 이 서문에서 보르헤스는 다음과 같이 체스터튼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체스터튼은 카프카나 포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용기 있게 행복을 선택했다. 아니면 적어도 행복을 발견한 듯했다. 체스터튼에 따르면 가톨릭은 상식에 근거한 종교였다. 그는 기묘한 형태의 열쇠는 기묘한 형태의 자물쇠에 완벽하게 들어맞듯이 가톨릭 신앙의 기묘함은 우주의 기묘함과 어울린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는 내가 체스터튼의 가장 훌륭한 소설로 생각하는 작품이 담겨있다. 벼랑 위의 기다란 길, 흰색 군복의 기병과 백마, 체스게임 등으로 멋지게 장식한 작품이다. 바로 「묵시록의 세 기병」을 두고 하는 소리다… 내용을 너무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이르슈 박사의 결투」는 탄원서가 결투의 발단이 된다. 스티븐슨과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작품들에서 영향받은 이중성이라는 오래된 테마가 이 작품에서 아주 독창적으로 선보였다. 독자가 예상하지 못하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의심을 갖고 있던 독자는 그 이중성을 발견하면서 그 신선함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문학은 행복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마 체스터튼만큼 내게 행복한 시간을 많이 안겨 준 작가는 없을 것이다. 난 그의 신앙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단테의 「신곡」에서 영향받은 그의 신학도 함께 나누지 못한다. 하지만 둘 다 체스터튼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그를 내 가장 훌륭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고 이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의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일급의 문학성과 함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정한 통찰과 함께 인간의 약함에 대한 연민, 인간의 오만함과 자아도취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의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사회적, 시대적 병리현상이나 잘못된 가치관들에 대한 문명비판적인 통찰들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 영국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PD 제임스 역시 이러한 주제와 세계관의 확장을 그의 훌륭한 문학성 만큼이나 체스터튼이 추리문학이라는 장르에 기여한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불가지론자인 보르헤스가 존중을 담아 말하고 있듯 체스터튼의 세계관과 인간학적, 윤리학적 직관들은 신앙적 통찰과 신학적 성찰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브라운 신부를 통해 체스터튼은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관념과 사변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매일매일의 삶과 행위 안에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신앙과 신학, 이것을 영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브라운 신부의 ‘영성’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브라운 신부는 누구인가?
체스터튼은 작가 생활 내내 틈틈이 신문이나 잡지에 브라운 신부 이야기들을 썼는데요, 이 작품들은 「브라운 신부의 결백」(1911), 「브라운 신부의 지혜」(1914), 「브라운 신부의 의심」(1926), 「브라운 신부의 비밀」(1927), 「브라운 신부의 스캔들」(1935)이라는 다섯 권의 작품집으로 묶여 출판됐습니다. (이 작품집 모두 2002년 북하우스 출판사에서 우리말로 번역돼 출판되었습니다.) 초기 작품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매우 과소평가되고 거의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푸른 십자가」에 나오는 브라운 신부에 대한 외모를 묘사한 유명한 장면이 그 전형입니다.
이 작달만한 신부는 전형적인 동부 촌 사람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넙적하니 둔해 보였으며, 눈은 북해만큼이나 공허했다… 철저한 프랑스식 무신론자인 발렝탱 경감은 성직자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동정할 만큼의 인정은 있었다. 기차에 오른 그 신부의 모습은 발렝탱뿐 아니라 누가 봐도 연민을 자아낼 만큼 애처로웠다… 그에게서 절묘하게 어우러져 배어나오는 에식스 지역 특유의 바보스러움과 신앙심 깊은 단순성이 스트랫퍼드에 도착할 때까지 발렝탱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브라운 신부의 결백」 중에서 「푸른 십자가」)
이러한 묘사에서 브라운 신부를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순진무구’와 ‘단순성’이 작가 자신의 의도와도 부합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 신부 이야기의 이러한 첫인상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를 과소평가하지만 마지막엔 그가 놀라운 지성과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브라운 신부가 사람들을 속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