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중 인권 침해 논란 심각… 교회 지도자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벌이는 범죄와의 전쟁이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교회 지도자들이 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공권력의 횡포 앞에서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
필리핀 주교회의 기초공동체위원회 위원장 아마도 피카달 신부는 “예상한 사태가 벌어졌지만 교회는 권력의 초법적 살인 행위를 저지할 힘이 없다”며 “권력은 통제 불능 상태이고, 교회 지도자들은 서서히 희망을 잃어가는 상황”이라고 아시아 가톨릭 통신(UCAN)을 통해 밝혔다.
범죄 척결 공약으로 당선된 두테르테 대통령은 7월 초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경찰에게 용의자 현장 사살을 허용하는 등 초법적 수단을 거침없이 동원하고 있다. 단속 및 검거 현장에서 사살된 용의자가 560명을 넘어선 상태다. 교회와 인권 단체들은 “과거 군부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인권 침해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주교회의 의장 소크라테스 빌레가스 대주교는 이달 초 “이런 살인에 불편해 하는 인도주의적 목소리가 있으나, 이 목소리는 복수를 외치는 더 큰 목소리에 매몰되거나 정치적 맹공의 달콤한 특권에 묻혔다”며 “우리는 마약사범을 척결하겠다는 꿈속에서 이 나라를 ‘킬링 필드’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 ‘제멋대로 정의’가 더 안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가”라고 국민들에게 거듭 반문했다.
이달 초 타클로반에서 마약 용의자 3명이 피살된 데 대해 팔로대교구 비르길리오 카네테 신부는 “살인 행위는 통제 불능 상태”라고 개탄했다. 용의자 주검 옆에는 ‘나는 마약 밀매꾼입니다. 주여,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푯말이 놓여 있었다.
카네테 신부는 “교회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경찰과 대통령만이 (마약사범 검거) 유예 기간을 선포하고 살인을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 일각에서는 1986년 ‘피플 파워’ 시민혁명을 이끌어 장기 군부 독재를 종식시킨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왜 이토록 퇴조했는가 자문하는 성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대선 당시 반인권적 언행을 우려하며 두테르테 후보를 공공연히 반대했으나 국민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