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평화칼럼] 인구정책 ‘유감’

이창훈 알폰소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이창훈 알폰소




나는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다. 이른바 ‘58 개띠 군’에 속한다. 초등학교 때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로도 감당할 수 없어 오전반ㆍ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받았다.

중학교에 가서는 가족계획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보고 들은 것도 이 시기였다. 인터넷을 뒤지며 추억해 보니 ‘하루 앞선 가족계획, 십 년 앞선 생활 안정’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 되자’라는 표어도 있었다. 가톨릭 교회가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악법이라고 지탄하며 ‘살인을 정당화하는 악법’이라고 수십 년째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것도 이때였다.

1980년대 중반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했을 당시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자식은 하나만’이었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 당시 표어들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둘도 많다’는 표어도 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정관 수술을 받으라고 야단이었다. 비용도 공짜요 훈련도 면제해 준다는 달콤한(?) 유혹에 적지 않은 젊은 아빠들이 넘어갔다. 아들을 볼 욕심으로 자꾸 자식을 생산하는 이들을 겨냥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도 나왔다. 당시에 나는 아들을 봤다.

아들딸 구별하지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는 1990년대에도 여전히 호소력을 지녔다. 그런데 그 90년대에 나는 두 딸을 더 얻었다. 어떤 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알딸딸(아들ㆍ딸ㆍ딸)해서 참 좋겠다”고 농담 반, 부러움 반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주 시책은 여전히 ‘하나만’이었다. 일부 가톨릭계 병원을 제외하고는 셋째는 의료보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30년이 지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물론 이 변화가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견했던 일이고, 정부도 10여 년 전부터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추진해 왔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회복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서둘러 긴급 보완 대책을 마련하고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난임 부부 지원 확대, 일ㆍ가정 선순환 체계 확립, 다자녀 가정 우대 강화, 저출산 극복 거버넌스 강화 등이 골자다.

정부의 긴급 대책에 솔깃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대책은 해당 환자의 구체적인 몸 상태는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좋다는 약만 잔뜩 처방한 꼴이다. 처방도 필요하지만 그 처방을 환자가 잘 소화해 낼 수 있는지 몸 상태를 정밀하게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처방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게 처방을 소화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와 문화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게 있다. 인구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명의 문제다. 생명의 문제는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 곤란하다. 먹고 살기 위해, 나아가 인간답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해서도 경제적 측면에 소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이 생명보다 우선할 때 문제가 생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그게 아닌가.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난 60년 동안 경제 논리에만 집착하면서 목적과 수단을 바꿔 가장 중요한 생명의 문제를 뒷전으로 밀쳐 버린 게 아닌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08-3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0. 24

마태 7장 7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