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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 순교 150주년 학술심포지엄, 당시 시대상과 선교사 역할 등 살펴
“정조시대부터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지은 조정은 신유년 이후 (천주교를)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혹독한 박해를 가했습니다.”(조한건 신부)
“당시 신자들의 리더였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의 종교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자국의 정치 사안을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김정숙 교수)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한국교회사연구소는 9월 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병인사옥, 병인양요, 병인박해’를 주제로 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1만여 명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 시기 시대상과 선교사들의 역할 등을 돌아봤다.
조한건(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신부는 ‘병인사옥과 신자들의 대응’ 발제에서 “조선왕조는 병인사옥을 통해 새로운 사상에 대한 거부와 배척으로 조정과 집권세력 유지하고자 천주교 사학을 일삼았다”며 “신자들은 병인박해 이전에 간행된 기도서와 필사본으로 ‘서적을 통한 신앙생활’을 주로 이어갔다”고 말했다.
김정숙(영남대) 교수는 ‘병인박해 전후 조선 선교사들의 조선 이해’란 발제에서 “다블뤼, 베르뇌 주교를 필두로 한 프랑스 선교사들은 박해 속에서도 정치적 사안으로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길 원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러시아 함대의 출몰 등 서양의 문호개방 요구에 선교사들은 국제 정세에 편승해 종교를 전파하려 하진 않았지만, 조정은 외세의 침입에 천주교의 유입을 덧칠해 박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