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땅·주민들 바라보며 통일 사목 의지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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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주 일대 압록강 하류에서 만난 북한의 어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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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록강 상류의 북한 농가. 산이란 산은 다 다락밭으로 변해있고, 다락밭 사이로 불을 피웠는지 연기가 나고 있다. |
1844년 2월 창춘 시 조바자츠 교우촌을 떠난 청년 김대건은 함북 경원으로 향한다. 지린 시와 백두산을 거쳐 두만강을 따라가는 게 지름길이었지만, 국경을 따라가지 못했다. 거센 눈보라와 혹한, 끝없이 펼쳐진 백두 원시림을 뚫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청의 봉산(封山) 정책도 원인이었다. 해서 멀리 무단장 시 인근 닝안, 훈춘을 거쳐 경원개시를 틈타 조선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선교사 입국로 개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 소회를 김대건은 서한에서 이렇게 전한다.
“만일 우리가 산림(백두산)을 가로질러 곧장 조선으로 갈 수 있었다면, 여정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림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성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생들은 때 이른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는 백두산을 거쳐 조ㆍ중 국경을 달렸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이도백하진을 출발, 백두산→장백조선족자치현→닌장→퉁화→지안→단둥→다렌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를 보며 오른 백두산 북파(北坡) 코스 탐방은 등정이라기보다 관광에 가깝다. 험로 주행능력이 탁월한 SUV로 기상관측소까지 이동, 5분가량 걸어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관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평화로 가는 길’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하는 북한 땅이 바로 천지 넘어 양강도 삼지연군 ‘장군봉’이었기에 다들 감동을 감추지 못한다.
최영두(마태오, 35) 신학생은 “언젠가 남북이 통일돼 북한 쪽 능선에서 백두에 올라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며 “답사를 통해 남북 간 경제 통합과 통일 준비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달았다”고 전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서간도의 중심인 장백조선족자치현이다. 그 맞은편이 양강도 혜산시로, 압록강 상류여서 강폭이 넓지 않아 최적의 탈북 루트다. 한 집 건너 탈북자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탈북이 일상화돼 있던 곳이다. 하지만 이런 입지 조건 탓에 혜산 주민들은 북 정권으로부터 혹독한 탄압과 감시를 받아야 했다.
중국 측에선 강변에 혜산의 도심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3층짜리 전망대까지 세워 혜산을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중국 공안들의 감시 때문에 전망대에 카메라를 한 대도 가져가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다만 두터운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북 노동자들,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공장 굴뚝을 통해 혜산의 새벽을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베트남 북부 국경 지역인 란손교구 출신으로 서울 대신학교에 재학 중인 응웬 반 도안(32) 신학생은 “조ㆍ중 국경을 보며 남북 베트남전쟁 생각이 많이 났고,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지 가늠이 되고도 남았다”며 “같은 공산국가라는 제약 속에서 살아온 중국, 북한 교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기도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전망대를 떠나 압록강 변을 따라 달리는 길에서 본 북녘땅은 누더기와도 같은 다락밭으로 뒤덮여 있다. ‘주체농법’이라는 이름으로 산꼭대기까지 감자와 옥수수 등을 경작하면서 민둥산으로 변해 버렸다. 때문에 토양 유실과 침식을 유발할 개연성이 크고, 압록강 변 원시림은 급속히 파괴됐다. 1990년대 중반, 큰물(홍수) 피해와 가뭄으로 식량난이 악화하면서 불러온 참화다. 이에 해마다 북한은 “비가 오면 홍수, 비가 안 오면 가뭄”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강변을 따라 달리다 양강도 김정숙군, 김형직군을 잇따라 만난다. 옛 신파군과 후창군이다. 김일성ㆍ정일 부자 가계와 연결지어 개칭한 북한의 혁명 사적지로, 지나온 압록강 변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어 린장 시와 자강도 최북단 고원지대인 자강도 중강군,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성 인근 퉁화 시, 광개토태왕비와 장군총(장수왕릉), 고분군 등 고구려 유적이 숱하게 남아 있는 지안 시와 자강도 만포시를 지난다. 곳곳에 민족의 숨결이 배 있고, 언젠가 와 본 듯 한결같이 친근하다. 하지만 차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북한 땅은 여전히 황폐하다.
김기현(요셉, 26) 신학생도 “초소에서 감시하는 군인들, 빨래하는 아낙네들,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목탄차를 보며 북한의 현실을 체감했고, 예전부터 접해온 북한 선교라는 말을 피부로 실감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윽고 랴오닝성 단둥에 이른다. 압록강을 경계로 신의주시와 접한 국경도시다. 6ㆍ25전쟁 때 파괴된 압록강 단교를 돌아본 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신의주시를 돌아본다. 단교를 지나 압록강 철교에서 북한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단둥 사람들이 한 번도 돌아가는 걸 보지 못했다는 대형 놀이기구와 기와집으로 멋지게 지은 압록강각, 신의주 선착장에서의 하역 작업, 중국전기자동차업체인 비야디(BYD) 마크가 선명한 승용차에서 짐을 내리는 주민 등을 통해 북한을 간접 체험한다.
2000㎞에 가까운 조ㆍ중 국경을 돌아본 신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비극적 현실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북한을 위해, 중국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북한을 보며, 우리와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선교실습 여정 하나하나가 제 삶에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임강택(마르티노) 소장은 “사제들이 깨어 있어야 분단 문제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기에 조ㆍ중 국경 탐방 기회를 갖게 됐다”면서 “나중에 사제로 살 때 평화라는 의제나 북의 현실, 남북문제을 판단하는 데 좋은 경험이 됐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