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과 형제애 돈독한 존경받는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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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정신철(오른쪽) 주교가 주교 임명 발표 직후 당시 교구장 최기산 주교와 악수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교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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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주교가 2012년 교구청 사제들과 성언의 집에서 설거지 봉사를 하고 있다. |
정 주교는 어린 시절 ‘범생이’로 불렸다. 공부도 잘하는 데다 착실한 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복사를 서며 본당 신부들과 가깝게 지냈고, 자연스럽게 사제들의 수단 자락을 보며 사제 성소를 키웠다. 또래와 놀더라도 항상 맡은 일은 누구보다 먼저 끝내놓는 게 정 주교의 생활 습관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아침과 저녁 기도 시간을 정해 두고 이를 꼭 지켰어요. 저녁까지 놀다가도 시간 맞춰 집에 뛰어들어가 함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정 주교는 어릴 때부터 아침ㆍ저녁은 물론 등하굣길에도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정 주교 가족들조차 “우리 집은 수도원이었다”고 할 만큼 매일 기도하는 건 당연한 일과였다. 식구 중 누가 밤늦게 오더라도 ‘수도원장’으로 불렸던 부친 정종심(바오로, 84, 인천 신공항본당) 옹과 모친 박순정(도나타, 81) 여사는 두 아들 정대철(베드로, 54, 서울성모병원 소아과) 교수와 정 주교를 꼭 기다렸다가 함께 기도한 뒤 잠들곤 했다.
정대철 교수는 “부모님께서는 함께하는 식사와 기도로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면서 “이것이 주교님의 인격 형성과 사제의 길을 걷는 데에 큰 작용을 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3 때엔 서울대 진학 이야기가 오갔을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던 정 주교가 신학교에 간다고 하자 학교 교장이 집으로 찾아와 통사정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정 주교의 부모는 그때 “대대로 가톨릭 집안인 우리는 아들이 사제가 되길 강력히 원한다”며 학교 측 요청을 일축했다.
“사제가 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뭘까요?”
1993년 사제 서품식 전날 가족이 둘러앉은 식사 자리에서 부제였던 정 주교가 묻자 아버지는 “신부가 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미사 전 미리 고해성사를 주고, 신자들을 많이 만나는 사제의 기본 덕목을 잘 지켜 달라는 덕담이었다.
정 주교는 1983년 썼던 입학 소감에서 “(학창 시절) 아침 등굣길에 드리는 로사리오 기도를 통해 성소를 생각했다”며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기도하자 그러면 하느님은 꼭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위로하셨다”고 적으며 가족의 든든한 기도와 신앙심이 사제 성소의 밑바탕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정말 열매를 잘 맺어 10년 후에 좋은 사제가 되어다오. 지난 20여 년간 드린 아버지와 엄마의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게 말이다”(「아들아! 성인 사제 되어 다오」 중에서)
1994년 정 주교의 어머니 박순정 여사가 쓴 「아들아! 성인 사제 되어 다오」에서도 ‘기도하는 성가정’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책에는 매번 “사랑하는 아들 요한에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편지가 여러 편 소개돼 있다. 사제의 길을 걷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기도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 출간 당시에도 화제가 됐다. 지금도 어머니와 아들은 매달 편지를 주고받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통화하고 있다.
박 여사는 “교구장 임명 소식을 듣고 청소하다 말고 성모상 앞에서 펑펑 울었다”며 “하느님이 주신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하느님 일’에 따르는 희생을 인내로 받아들이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정 주교는 2002년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실천신학 교리교수법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 교리교육의 모델」(2007), 「교리교육 문헌 해설」(2008) 등을 집필해 내며 이론과 실천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오는 데 이바지해 왔다. 이에 대해 주변 사제들은 “정 주교는 열정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사목자”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전임 교구장 고 최기산 주교와 정 주교는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 같다”고 할 만큼 ‘교구장과 보좌 주교’ 이상으로 돕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함께 기도를 바치고 소통하며 교구 일을 해나갔다. 최 주교는 어떤 일이든 정 주교를 불러 교구 현안을 논의했다. 2012년 박문여중고의 송도 이전, 2014년 가톨릭관동대 인수 등 교구가 직면한 굵직한 현안에 당면했을 때에도 두 주교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까지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생전 산책을 좋아했던 최 주교처럼 정 주교도 교구청 사제들과 주변 골목골목을 다니며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보좌 주교 시절 젊은 사제단 결속을 위해 애써온 정 주교는 젊은 신부들을 먼저 찾아가 식사하며 사목적 어려움을 듣는 ‘경청하는 주교’로 통한다. 정 주교와 신학교 입학 동기인 정인화(인천 대야동본당 주임) 신부는 “젊은 사제들과 격의 없이 틈나는 대로 만나 대화하는 것을 꾸준히 해 오셨다”면서 “사제들의 생활과 고충을 잘 아시기에 교구 사제단과의 형제애도 그만큼 끈끈하다”고 말했다.
정 주교와 가까운 이들은 ‘사랑과 존경받는 주교’, ‘아버지 같은 주교’가 되길 희망했다.
오용호(인천교구 사무처장) 신부는 “지금처럼 소탈한 모습으로 사제들과 항상 함께하는 교구장이 되실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정윤화(인천교구 관리국장) 신부는 “일을 많이 하는 주교님보다 사제와 신자의 의견을 두루 듣는 아버지 같은 주교님이 돼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정 주교의 은사인 이찬우(인천 상동본당 주임) 신부는 “사목자는 모두의 사랑과 더불어 가르침을 전하는 존경받는 이가 돼야 한다”며 “지금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사제단과 더욱 호흡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정신철 주교 약력
1964. 10. 인천 송림동 출생
1991. 2. 가톨릭대학교 졸업
1993. 2.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졸업
1993. 1. 사제 수품
1993. 2~1994. 2 삼정동본당 보좌
1994. 2~2002. 7 프랑스 파리가톨릭대(실천신학 박사)
2002. 8~2003. 1 역곡2동본당 보좌
2003. 1~2010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2007. 3~2009. 1 인천가톨릭대학교 기획처장 겸 영성관장
2009. 1~2010. 6 인천교구 성소국장
2010. 4 인천교구 보좌 주교 임명
2010. 6 주교 수품
2010. 10~2016. 3 주교회의 해외선교ㆍ교포사목위 위원장
2010. 10~ 주교회의 사회주교위 위원
2016. 3~ 주교회의 교육위 위원장
2016. 6~2016. 11 인천교구장 서리
2016. 11. 인천교구장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