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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생활의 기쁨으로 박해 딛고 일어서

순교영성연구소 심포지엄, 박해 후 신앙 선조들의 삶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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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영성연구소 심포지엄, 박해 후 신앙 선조들의 삶 조명



“이 교우들은 일반적으로 열심히 하고 성사 받기를 좋아합니다.…빵(성체)을 받아먹고는 명랑하고 경쾌한 걸음으로 돌아가서 농사하거나….”(「서울교구연보」의 ‘1893년 보고서’ 중)

1866년 병인박해 이후 각지로 흩어졌던 신자들은 교우촌을 형성하고 이처럼 성사생활의 기쁨 속에 박해의 고통을 딛고 선교사들과 함께 신앙의 명맥을 이어갔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소장 강석진 신부)는 19일 서울 용산구청에서 병인 순교 15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병인박해 이후 평신도 신앙운동’을 열고, 박해 이후 신앙 선조들의 삶을 조명했다.

강석진(순교영성연구소장) 신부는 ‘병인년 박해 이후 평신도의 삶과 신앙’ 발제에서 개항기 이후 재입국해 ‘교회 재건’에 불씨를 지핀 리델 주교와 블랑 신부 등 선교사들이 남긴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박해 이후 신자들 삶을 전하면서 “83세 노인이 ‘천당’에 가기 위해 세례를 받으러 험준한 산속 공소를 찾고, 성사 받기를 좋아했던 교우들은 성체를 영한 뒤에는 경쾌한 걸음으로 돌아가 농사짓고 장사를 했다”며 “임종 환자가 생기면 달려가 함께 기도하고, 어린이들은 천주가사를 크게 외우는 등 성사생활 가운데 신앙 전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강 신부는 “당시 선교사들의 열성과 박해 때 살아남은 신자들의 신앙적 노력이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김정숙(아기 예수의 데레사, 영남대 역사학과) 교수는 ‘개항기 서천 지역의 천주교 전파와 최발바라’란 발제를 통해 대전교구 월산공소 100년 역사의 뿌리가 됐던 최 바르바라(1846~1903)의 신앙을 전했다. 김 교수는 “독실한 신자 집안 출신이었던 경주 최씨 가문의 최 바르바라는 홀로 지켜오던 신앙을 죽기 전 남편과 아들에게 전했고, 이 신앙 전수가 이후 월산공소 설립으로 이어져 박해 뒤 신앙 공동체 형성과 유지에 큰 힘이 됐다”며 “월산공소 사람들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맺으며 아름다운 신앙 자산을 형성해 왔다”고 말했다. 1926년께 설립된 월산공소는 최 바르바라의 아들 양재근씨가 공소 회장을 맡은 뒤 적극적인 선교 활동으로 1940년대 서천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공소로 발전하기도 한 곳이다.

서종태(스테파노, 전주대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는 이어 ‘서천 지역 공소 회장 양재근의 선교 활동’이란 발제에서 “월산공소 초대 회장 양재근(1871~1948)은 동네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명하고, 대세를 줬으며 가난한 이들에겐 먹고살 방도도 마련해 주며 선교 활동을 해나갔다”며 “의술을 지닌 양재근은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교우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도 주변에 입교를 권유하는 등 적극적이었다”고 생활상을 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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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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