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로 초토화됐던 한국교회의 명맥을 이어온 평신도 활동을 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산하 순교영성연구소는 11월 19일 서울 용산구청 소극장에서 ‘병인박해 이후 평신도 신앙운동’을 주제로 병인년 순교 15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신앙 선조들의 삶을 조명해 왔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순교자 중심으로 구성돼왔다. 비록 순교를 하지 못했지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이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이번 심포지엄 축사를 통해 “병인박해 이후 신앙 선조들의 신앙을 집중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무형의 영적 유산을 찾아내는 작업”이라면서 심포지엄의 의미를 평가했다.
조광 명예교수(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도 ‘개항 전후 천주교 신앙의 주역’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펼치고, 병인박해 이후 선교의 자유가 주어지던 개항기까지 ‘살아남았던 신자들’을 주목했다. 조 교수는 특히 “이들은 박해를 이겨냈고, 선교사를 다시 맞을 준비를 했다”면서 “이들은 당대 교회의 주역으로, 한국 교회사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포지엄에서는 김정숙 교수(영남대학교 역사학과)가 ‘개항기 서천지역의 천주교 전파와 최발바라(1846~1903)’를, 서종태 교수(전주대학교 사학과)가 ‘서천지역 공소 회장 양재근(바르톨로메오, 1871~1948)의 선교 활동’을, 강석진 신부(순교영성연구소장)가 ‘병인년 박해 이후 평신도의 삶과 신앙’을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충남 서천면 월산공소의 역사를 짚어본 김정숙 교수는 “교우촌이나 공소는 실제 신앙을 일상의 생활에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잡아주는 거울”이었다면서 “박해시기에는 신자들이 여기에서 삶의 에너지를 찾았다”고 전했다.
강석진 신부는 1791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교우촌은 박해시기 살아남은 신자들에게 중요한 삶의 못자리가 되었으며, 이후 종교의 자유를 얻으면서 공소나 성당 등으로 발전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 신부는 “이들 평신도들은 무너진 교회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데 큰 힘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삶과 굳건한 신앙은 당시 일반인들에게 천주교 신앙에 대한 큰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을 후원한 새남터본당 주임 양낙규 신부는 “박해시대에 숨어서 신앙을 지켜냈고 박해가 끝난 뒤 교회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던 평신도들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이들의 신앙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은 우리 신앙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