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형우 아빠스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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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우 아빠스가 2009년 8월 30일 화재의 아픔을 딛고 새로 지은 수도원 성당을 축복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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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우 신부가 2001년 9월 11일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로 아빠스로 축복받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자료사진 |
고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는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섬기는 겸손한 수도자였다. ‘서로 섬기자’는 그의 수도원장직 사목 표어처럼 고인은 권위를 드러내기보다 협력하고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수도 생활을 해왔다.
그는 전교회장이었던 어머니 김봉덕(아가타, 89) 여사의 신앙을 그대로 습득하며 성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도 생활을 열심히 했고 긍정적이었다. 하느님께서 다 이뤄주실 것이라는 낙천적 성격은 큰일이 닥칠 때마다 그에게 돌파구가 됐다. 힘들 때일수록 호탕하게 웃는 것이 그의 상징이 됐다.
1965년 3월 1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한 그는 1971년 첫서원을 하고 1977년 7월 11일 사제품을 받았다. 1975년부터 로마 유학 생활을 한 그는 교황청립 성 아우구스티노 대학에서 1978년 「테르툴리아노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 논문으로 교부학 석사를, 1984년 「성 베네딕토 규칙서와 이전의 규칙서들에 나오는 형제적 교정」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8월 귀국 후 그는 왜관수도원과 신학교, 피정의 집 등에서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 지성인들에게 교부학을 강의하면서 풍부한 지식과 삶이 어우러진 영성적 가르침을 선사했다. 특히 그는 1998년 재속회 성격을 띤 봉헌회 책임을 맡으면서 그리스도와 사부 성 베네딕토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전파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아빠스좌 수도원이었지만 1995년부터 2001년까지는 아빠스 없이 관리원장 체제로 있었다. 그러던 중 2001년 8월 23일 왜관수도원 수사들은 이 신부를 제4대 아빠스로 선출했고, 이 신부는 그해 9월 11일 수도원장직에 착좌했다. 이후 2005년에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를 겸하게 됐다.
이 아빠스는 기도 생활과 영적인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수도 형제들과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아울러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 생활단 장상협의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교회와 남녀 수도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2013년 4월 아빠스직을 사임한 그는 이후 창원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지도 신부로 조용히 살아왔다. 수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나빠졌던 건강은 늘 그를 괴롭혔다. 그러다 11월 27일 주일미사를 드리려고 수녀원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졌고 깨어나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어머니와 여동생 이현숙(안나 마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가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이형우
아빠스 약력
1946. 9. 황해도 재령 출생
1965. 3. 왜관수도원 입회
1971. 2. 첫서원
1974. 2. 종신서원
1977. 7. 사제수품
1984. 3. 교황청립 성 아우구스티노 대학 교부학 박사 학위 취득
1984. 8.~2001. 8. 수도원 청ㆍ지원자 지도, 구미 원평ㆍ대명동 주임, 본원 부원장
2001. 8. 왜관수도원 제4대 수도원장 피선
2001. 9. 아빠스 축복(수도원장직 착좌)
2005. 11. 덕원자치 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 임명
2013. 4. 수도원장 사임
2013. 10. 마산 트라피스트 수녀원 지도
2016. 11. 27.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