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에 따라 생후 40일 된 아기 예수님을 주님께 바칩니다. 시메온은 아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우리 선배들과 부모들이 여러분의 봉헌과 관련해 어떤 꿈을 꾸었는지 기억하십시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예언자적 용기를 냈는지도요.
그러한 태도는 축성생활을 한층 풍요롭게 해줄 것입니다. 특히 축성생활을 척박하게 만들 수 있는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세속화와 성소 감소 등으로 수도회들이 느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생존의 유혹, 우리 자신과 공동체에 서서히 뿌리내리려는 악 같은 것 말입니다.
생존을 의식하는 사고방식은 우리를 반발하게 하고, 겁을 먹게 하고, 굼뜨게 합니다. 우리 자신을 수도원과 선입관에 가둬버립니다. 설립자의 꿈에서 나온 예언적 창조성에 다시 불을 밝혀야 하는데도, 자꾸 과거의 영광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도전들을 피하려고 지름길을 찾게 합니다.
또한, 그런 사고방식은 카리스마의 힘을 앗아갑니다. 카리스마를 길들이려고 하니까요. 그럼 결국 사용자 편의에 맞춘(user-friendly) 카리스마가 되는 거죠. 생존 의식은 은총을 망각하고 하고, 우리를 성사의 전문가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예언적 증거로 희망의 아버지요 어머니, 형이요 누이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 안으로 들어갑시다. 종교 ‘활동가’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용서받은 사람으로, 세례의 성유로 도유된 사람으로, 그 도유와 하느님의 위로를 모든 이와 나누라고 파견된 사람으로 다가갑시다. 당신 백성을 만나기 위해 앞서가시는 예수님과 동행합시다. 선배들의 꿈을 이어받지 못해 어떻게 예언해야 하는지 잊은 사람들에 대해 불평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평온하게,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나아갑시다. (2일 봉헌생활의 날·주님 봉헌 축일 강론)
정리=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