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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법재판소, 종교적 상징물 스카프 착용 금지 ‘적법’ 판결 … “종교의 자유 위축” 우려 커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14일 종교적 상징물로 인식될 수 있는 스카프 착용을 일터에서 금지하는 게 적법하다고 판결한 데 대해 유럽 정치계와 종교계 반응이 엇갈린다.
판결을 환영하는 측은 공공 영역에서 종교 또는 종교적 신념을 더 밀어내려고 하는 이들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보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반(反) 이슬람 정서를 의식해 판결을 지지한다.
그러나 종교계는 종교 자유 위축과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 조장을 우려한다. 종교와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ECJ는 근로자가 정치적ㆍ종교적 신념을 드러내는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고용주 권리를 인정한다. 종교적 신념 표출이 노골적일 경우 십자가도 해당한다.
이번 판결은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무슬림 여성이 고용주 반대에도 불구하고 히잡(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착용을 고집하다 해고된 뒤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가 사업장의 중립적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고용주의 손을 다시 한 번 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정치인들 가운데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판결에 강한 의문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메이 총리는 “여성에게 어떤 것은 착용해도 되고, 어떤 것은 착용하면 안 된다고 규정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오랜 전통인 표현의 자유를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포츠머스의 필립 에간 주교는 판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유럽 법원의 십자고상 부착 금지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세속주의자들에게는 또 다른 승리일 테지만. 자기표현의 자유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십자고상 부착 금지’란 일부 국가 법원이 종교 자유 침해를 이유로 공립학교 교실에서 십자고상을 철거하라고 판결한 것을 말한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칼스루에 판결’(1995년)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판결을 두고 신앙적 열기가 쇠퇴했더라도, 그리스도교 전통과 문화가 지배적인 독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도 “아직은 우리를 이어주고 있는 이 상징을 떼어내게 하는 것은 매우 경솔하다”고 질타했다.
한편,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ECJ가 초승달(이슬람)을 상대로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다”는 극언을 쏟아냈다.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외 거주자와 이슬람주의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선동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