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인양, 진상 규명과 미수습자 문제 해결은 아직도…
“3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세월호가 생명체였다면 이렇게 말했을까. 아니면 “왜 이제야 꺼내줬느냐”며 통탄했을까. 오랜 시간 수심 44m 아래에서 차디찬 물살과 어둠을 견뎌낸 세월호는 마치 ‘죄인’처럼 끌어올려졌다. 극심한 고난을 감당한 죄인의 몸은 심한 물때로 뒤덮였고 바로 눕지도 못했다. 그리고 3월 31일 ‘마지막 항해’를 끝으로 출항 1080일 만에 뭍으로 돌아왔다. 원래 가려 했던 제주도가 아닌 목포 신항으로.
미수습자 가족들, 애타게 기다리지만
‘제주도의 꿈’은 돌아오지 않는 ‘하늘나라 수학여행’이 됐다. 바다가 삼킨 희생자와 미수습자 304명의 가족들은 3년째 사순 시기를 살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식구를 애타게 기다리며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절규하고, 유가족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와 식구를 가슴에 제대로 묻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봄은 다시 왔다. 3월 30일 안산 하늘공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단원고 학생 100명이 잠들어 있다. 3년 전 티 없이 해맑은 모습 그대로인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희생자’가 됐다. 함께 찍은 사진, 음료수, 사탕, 묵주, 꽃다발, 편지…. 가족과 친구들이 왔다 간 흔적이 가득했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은 한 학생의 묘소 앞엔 “21번째 생일을 축하해”라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죽음은 우정을 이기지 못했다. 하늘나라로 간 친구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이따금 들러 참배하는 시민들은 발걸음을 쉽사리 떼지 못했다.
안산 하늘공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화랑유원지 내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엔 평일이라 그런지 참배객들이 적었다. 누군가 금방 다녀갔는지 영정 사진 아래 놓인 꽃다발에선 향기가 났다. 분향소 옆, 색이 다 바랜 컨테이너 박스에선 유가족들이 3주기를 앞두고 추모객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노란 리본과 팔찌, 스티커가 전부지만, 유가족들은 “잊지 않고 와주시는 시민들에게 드릴 작은 감사의 표현”이라고 했다.
희생자 이정인(단원고 학생)군 아버지 이우근씨는 “우린 자녀가 사고를 당한 현장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3년간 팽목항, 당거차도, 광화문, 분향소를 거점 삼아 지내왔다”며 “바라는 건 오로지 진실 규명과 미수습자 문제 해결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했다.
분향소의 조용한 분위기와 화랑유원지 저편 공놀이하는 시민들의 활기가 묘하게 교차한다.
잊힐 줄 알았는데…
“해가 바뀌면 사고 당시 아픔이라도 좀 덜어지고 잊힐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봄바람 냄새만 맡아도 그때 기억이 생생히 일렁입니다.”(김건우군 어머니 노선자씨)
안산 단원구 와동에 있는 수원교구 안산생명센터를 찾았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 어머니들이 아픔을 가슴으로 겨우 이겨내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사람들은 잊는 것만이 치유되는 길이라 여기지만, 우린 잊고 싶지 않다. 내 자식을 어떻게 잊느냐”며 “우리는 아이의 이름으로, 아이들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