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6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제·신자들 함께했기에 교구장이라는 ‘십자가’가벼웠습니다

27년 만에 전주교구장에서 물러나는 이병호 주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27년 만에 전주교구장에서 물러나는 이병호 주교

▲ 2002년 3월 성주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기도에서 십자가를 지고 치명자산을 오르는 이병호 주교.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 2015년 3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는 이병호 주교.

▲ 1990년 제7대 전주교구장 착좌식의 이병호 주교.

▲ 2010년 주교 성성 20주년 축하식에서 유장훈(오른쪽) 몬시뇰과 축하 케이크 촛불을 불을 끄고 있다.



“주교님 오늘의 빵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말씀(빵)을 묻는 질문에 이병호 주교의 성경 암송이 시작됐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레 시작된 이병호 주교의 성경 암송은 장장 2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이 주교가 들려주는 예수 부활 이야기는 루카복음서 23장에 이어 24장을 모두 읊으며 끝이 났다. 이야기를 펼쳐놓는 목소리는 또렷했고 막힘이 없었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양팔을 뻗고 가슴에 손을 대며 말씀을 그려 낸 이 주교는 “성경 봉독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동안 성경을 읽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빵입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듯 매일 새벽 성경을 읽으며 오늘 하루 동안 만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빵을 마련합니다.”

29일 이임식을 앞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를 20일 전주교구청 교구장실에서 만났다. 전주교구를 위해 27년 동안 말씀의 빵을 구워 온 이 주교는 “(교구장직에) 참 오래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공의회 헌장 구현 노력해와

“교구를 어떻게 변화시켜야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알려준 교회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관심사는 그것뿐이었습니다. 공의회 헌장의 모습대로 모든 교우가 사제와 함께 하느님 소명을 자각하고 수행하길 바랐고, 특히 전례 안에서 신자들의 생생한 기도가 드러나길 희망했습니다. 신자들이 적힌 대로 읽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입으로, 자기 표현으로 하는 기도가 되길 바랐고, 사제들도 스스로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가는 강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구 분위기가 매우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교구 본당을 방문할 때마다 신자들의 신앙체험을 꼭 들었다는 이 주교는 힘든 생활 속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신자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드러냈다.

“저는 신자들 덕분에 이렇게 기도하고 묵상할 여유가 있어요.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죠. 신앙을 실천하고 사는 신자들을 보면 교장 선생님 앞에 선 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그 옛날 사도행전이 지금도 계속되는구나 감동이 밀려옵니다.”

해군기지, 4대강 문제에서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과 최근 대통령 탄핵까지 시대의 아픔과 함께했던 이 주교는 “착각에 빠진 신앙인, 혼자 열심히 잘 믿다가 혼자 천국에 가는 신앙인이 되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공동체를 위한 존재 돼야

“보통 종교인을 생각할 때 산 깊이 들어가서 도를 닦거나 신비체험을 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우린 그것을 ‘가짜 신자’라고 합니다. 물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를 찾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죠. 예수님을 향해 달려들었던 모든 신자가 자기를 살려 달라 했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공동체를 위한 존재가 돼야죠. 나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줄 때,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도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 바퀴에서 떨어져 나가면 하느님을 잃고 외롭고 이기적인 존재가 됩니다.”

대선을 앞두고 지도자의 덕목을 묻는 말에도 이 주교는 역시 ‘공동체’를 우선으로 꼽았다.

“누구를 찍어야 내 처지가 확보되고, 내가 속한 계층이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천 년이 걸려도 발전이 없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누가 더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기준을 가져야 하죠.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



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로 지낼 계획

교구장직을 떠나지만, 이 주교의 일정은 지금 못지않게 바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심어 둔 상추와 호박, 가지, 토마토, 포도, 체리, 무화과가 이 주교를 기다리고 있다. 사제관이 들어설 전주 근교 대성리에서 농사짓기를 시작했다는 이 주교는 교구 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 역할도 맡게 됐다. 그러면서도 “피앗!(Fiat,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라며 “내 계획은 의미 없으니 하느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일 다른 옷을 입는 자연이 좋아 치명자산에서 묵상하기를 좋아한다는 이 주교는 지난 27년을 날씨에 비유했다. “오늘처럼 우중충하게 비가 오는 날도 있지만, 햇빛이 드는 날도 있고 그러다 또 천둥 벼락이 치는 날도 있습니다. 그 모든 날을 나와 함께 걸어주신 우리 신자들과 수녀님, 신부님들께 감사합니다. 무겁게 느껴지던 십자가였는데 앞뒤에서 받쳐주니 어느 날 붕 떠 있는 듯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이병호 주교 약력

1941년 전북 완주 출생

1969.12 사제 수품

1969.12 ~ 1971.04 전주교구 중앙본당 보좌

1971.04 ~ 1975.01 전주교구 정읍본당 주임

1975.01 ~ 1976.06 대건신학대학 전임 강사

1983.01 ~ 1990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대학원장)

1990.02.08 전구교구장 임명

1990.04.03 주교 수품, 전주교구장 착좌

2010.03 ~2017.03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2017.03.14 전주교구장 사임 발표

2017.04.29 전주교구장 은퇴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04-2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5. 26

마르 1장 38절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