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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동방의 러시아와 중국을 바라보는 모습을 묘사한 ‘가톨릭 헤럴드’ 지 삽화. |
바티칸이 최근 중국과 러시아 등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그 시선 이동이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영국의 ‘가톨릭 헤럴드’가 보도했다.
바티칸은 1951년 단절된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외교 관계 정상화 발표가 임박했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 역사상 교류가 거의 없었던 러시아와도 대화를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2월 제3국 쿠바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와 전격 회동한 데 이어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8월 20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키릴 총대주교를 만났다. 파롤린 추기경과 키릴 총대주교는 회동 후 “두 교회 관계는 이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며 대화 성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가톨릭 헤럴드’는 “적과 화해하면 내 친구와 멀어질 위험이 있다”는 속설을 들어, 바티칸이 러시아와 친해지면 우크라이나 교회와 서방 국가들과 소원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대만과 중국 지하교회가 “심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동방 가톨릭 교회는 스탈린 시대에 공산 정권과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다. 소비에트 정부는 우크라이나 성직자들을 처형, 투옥하고 재산을 몰수해 러시아 정교회에 넘겼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교회는 불법 단체로 낙인 찍힌 채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이 때문에 교황과 키릴 총대주교가 역사적 만남을 가진 후 공동 선언을 발표하자 우크라이나 가톨릭의 셰우추크 수석 대주교는 “선언문에 러시아 정교회 입장이 과도하게 반영됐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바티칸과 중국의 수교 발표가 나오면 대만과 중국 지하교회 반발은 어느 정도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어느 나라든 수교 조건 중 하나로 대만과의 외교 단절을 요구한다. 바티칸이 형식상으로라도 대만과의 외교 단절에 동의하면 대만 교회는 부득이한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실망감을 토로할 가능성이 높다. 공산 정부와 관변 종교 단체 애국회로부터 오랜 세월 차별과 소외를 겪어온 중국 지하교회도 애국회와 지하교회의 화해가 전제되지 않는 수교에 반대한다. 정부와 애국회 통제에 복종하지 않고 시련 속에서 사도좌와 일치를 이뤄온 게 지하교회다. 허베이성의 동(Dong) 신부는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수교하면) 사임하겠다.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교회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로마와 중국 어디에서도 지지받지 못한 채 복음을 따르며 종교 자유를 위해 싸웠다”며 바티칸의 애국회 인정은 정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티칸이 ‘동쪽’을 바라보는 것은 교회가 냉전시대에 취한 동방정책의 ‘개정판’이라는 시각도 있다. 외교에 정통했던 바오로 6세(재위 1963~78) 교황은 냉전시대에 동구 공산권과 서구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서방의 우려를 무릅쓰고 공산권에 적극 손을 내민 이유는 두 진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소비에트 치하에서 신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서방 세계와 중국ㆍ러시아는 국제 분쟁과 무역 질서 등의 사안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분쟁 지역에서 벌이는 기 싸움이 대표적이다. 유럽 연합도 3년 전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전격 합병한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파롤린 추기경과 키릴 총대주교는 이번 만남에서 분쟁 지역의 평화 건설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사람들이 갈등을 겪을 때 평화를 이끌어 내는 교회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의 평화 건설에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양측은 또 중동에서 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협력하기로 했다.
한편, 파롤린 추기경은 러시아 방문에 앞서 “교황청 외교는 정치ㆍ경제ㆍ이념을 초월한 평화 외교”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