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피조물들은 인간의 자의적인 지배 아래에 예속되는 단순한 대상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멋대로 부리고, 버리고, 없애도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피조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잘것없게 보이는 피조물들도 각각 고유한 존재 이유와 가치를 지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함께 궁극적인 종착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동반자들입니다.
물질 세계 전체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흙과 물과 산, 이 모든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제주의 오름, 바람, 돌, 물, 나무, 억새, 바다, 동물, 물고기 모두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무리 하찮은 피조물이라도 ‘형제’나 ‘누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욕심 때문에 이 피조물들을 남용하고 훼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형제와 누이를 뿌리치고 그분의 사랑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와 자연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세계관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합니다. 지구 상의 다양한 생물 종(種)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하며 서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이 생태계 전체의 조화와 공존의 고리를 수호하고 지키도록 초대받은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절대적으로 지배해 온 ‘발전’이라는 무의식적 굴레에서 우리는 해방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조건 없이 항상 최우선해 온 기계론적 ‘발전’은 결코 인류 문명의 절대적인 명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악화하고, 인간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발전은 참된 발전이 아니라 몰락입니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이면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 공동의 집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좀 더 검소한 생활을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양식을 바꾸고 소비를 조절하면, 기업은 현명한 소비자들의 연대로 압력을 받고 기업의 생산 방식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하며 함께 힘을 결집하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난방을 하는 대신에 옷을 더 껴입고,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사용을 삼가고, 물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만 요리하고, 생명체를 사랑으로 돌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실천하고 나무를 심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는 등의 행동들을 공동 운동으로 펼쳐 나가면 우리는 제주를 살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