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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바티칸에서 서한 발표 배경을 설명하는 신앙교리성 장관 페레르 대주교. 【바티칸=CNS】 |
교황청이 현대 교회에 퍼져가는 영적 세속성을 경계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다다를 수 없는 점을 거듭 확인하는 서한을 1일 발표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루이스 페레르 대주교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Placuit Deo)’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A4 용지 7쪽 분량 서한이다. 모든 주교에게 보내는 서한이지만, 관련 내용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신앙인에게 해당된다.
페레르 대주교는 서한에서 현대 교회의 신앙을 훼손하는 이단적 경향을 크게 두 가지 들었다. 하나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될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 사상인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다. 다른 하나는 타인이나 피조물과 관계하지 않아도 하느님과 내적 일치를 이루면 구원될 수 있다고 믿는 영지주의(Gnosticism) 경향이다. 두 사상은 이미 2~4세기에 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고대의 이단 사상이 현대 사회의 특성과 맞물려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페레르 대주교의 지적이다.
페레르 대주교는 “현대인들이 인간은 스스로 독립적 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개인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영지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성(理性)만을 신뢰하게 하고, 형제들을 향한 마음을 잃게 한다. 또 신앙을 주관적 믿음에 가둬버린다. 그런데 두 사상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속적으로 지적하며 비판해온 것들이다. 페레르 대주교도 “교황이 점점 많은 사람에게서 보게 된다고 말한 두 가지 오류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즉위 직후 발표한 첫 권고 「복음의 기쁨」(2013)에서 “영지주의의 매력은 특정한 경험이나 사상, 정보에만 관심을 두고 이로써 위로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며 “하지만 이는 결국 자기 생각과 감정에 갇혀 버리고 말게 한다”고 말했다.
또 자신에게 몰두하는 신(新)펠라기우스주의는 “자신의 힘만 믿고 정해진 규범을 지키거나 과거의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완고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한다”며 그런 사람이 내세우는 교리나 규율의 안전성은 “자아도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엘리트주의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두 경우 모두 예수 그리스도나 다른 사람들에 관해 관심이 없다”며 “(이에 물든) 불순한 형태의 그리스도교에서는 참다운 복음화의 힘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94항 참조)
이뿐만이 아니다. 교황은 2015년 르네상스 발상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도 “현대 교회가 직면한 두 가지 유혹이 펠라기우스주의와 영지주의”라며 추상적 구조와 순수 이상에 집착하는 신앙을 강하게 질타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도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인 1986년 “펠라기우스주의는 악한 사상”이라며 “이런 이단에 빠진 사람은 용서도 원치 않고, 하느님이 주시는 참된 선물도 거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이단 사상이 △영성의 세속화 △성령의 역동성 저하 △성직자 엘리트주의 △공동체성 약화 △제도권 교회에 대한 불신 등을 부추긴다는 게 교황과 신앙교리성 장관의 공통된 인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성의 세속화와 관련해 “겉으로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알량한 권력에 만족하는 자들의 허영을 부추긴다”며 이런 겉치레를 ‘선으로 포장된 끔찍한 타락’이라고 비판했다.(93~96항 참조)
페레르 대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와 소통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듯이” 하느님의 구원은 추상적, 내면적 방법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인간이 구원받는 장소는 세례와 성사가 이뤄지는 교회”라며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구원의 길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