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있다. 16세기 영국 금융업자이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고문이었던 토마스 그레샴(Gresham, T. 1519~1569)의 이름을 딴 법칙이다. 명목상으로는 똑같은 1실링 가치가 있는 주화라 하더라도, 순은으로 만든 1실링짜리(양화)와 은에 구리를 섞어 만든 1실링짜리(악화)가 있으면 시중에는 양화가 자취를 감추고 악화가 유통된다는 현상에서 착안한 법칙이다.
그레샴의 법칙은 일반적으로 경제 분야에 적용되지만 사실은 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일상 삶의 다양한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적으로, 나쁜 소문이 훨씬 빨리 퍼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나쁜 소문만이 아니다. 험담, 비방, 중상, 모략 같은 옳지 못한 말이나 작태들이 일반적으로 훨씬 더 큰 위세를 부리고 있음을 우리는 곧잘 경험한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감동도 크지만 나쁜 이야기가 미치는 파장이나 충격은 훨씬 클 뿐 아니라 그 폐해도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인터넷이나 SNS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짜 뉴스와 악성 댓글(악플)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가짜 뉴스와 악플의 위력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최근 미투(#MeToo)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으면서 미투를 고백한 피해자들은 악플로 인해 더욱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들 가운데 악플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로 직장을 그만둔 이들이 72에 이른다.
물론 악플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의 악성 댓글을 견디지 못한 한 가수가 목숨을 끊은 것이 계기가 돼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한 지 벌써 12년이 됐다. 수천 개의 학교가 이 운동에 동참했고, 운동본부는 선플 1000만 개 달기 운동과 100만 명 자원봉사단 모집 등 다양한 활동으로 꾸준히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특정한 사건이 터지면 선플보다는 악플이 훨씬 더 급속도로 전파된다. 여기에 반대 의견을 냈다가는 마치 몰매를 맞듯이 악플로 도배질 당하곤 한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가짜 뉴스와 악플은 마치 2000년 전 예수 사건을 상기시킨다. 예수는 진리를 증언하고 공정을 선포하며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보여주었지만 가짜 뉴스와 악플의 뭇매질에 결국 십자가형에 처해지고 만다. 하지만 예수는 그 참혹한 죽음의 질곡을 뚫고 부활함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에 이르는 길을 선사했다.
가톨릭교회는 이미 2002년 「교회와 인터넷」과 「인터넷 윤리」라는 두 문헌을 발표,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 같은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의 올바른 이용과 인터넷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회와 인터넷」의 마지막 12항은 “인터넷을 선용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길러야 하는 몇 가지 덕목”을 제시한다.
1) 뉴 미디어에 내포된 선과 악의 가능성을 분명히 파악하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현명함. 2)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의. 3) 도덕적 상대주의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고, 개인주의적 소비주의에 맞서 이타주의와 관대함을 옹호하며, 관능과 죄악에 맞서 품위를 지키기 위한 용기와 강인함. 4) 뉴 미디어를 선한 목적만을 위해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절제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덕목을 교회는 가장 중추가 되고 핵심이 되는 덕이라고 해서 사추덕(四樞德)이라고 불러왔다.
가짜 뉴스와 악플을 극복하려면 이런 덕목과 함께 선플 운동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예수가 죽음의 권세를 뚫고 부활하였듯이,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이 사추덕과 선플 운동으로 가짜 뉴스와 악플이 난무하는 뉴 미디어 세계를 정화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