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를 실천한 순례자로 평생을 살았다.
프랑스 출신으로,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소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하느님을 추구하는 삶에만 관심을 뒀다. 특히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다 세상을 떠난 삼촌을 따라, 오직 하느님만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했다. 하지만 몸이 약해 수도원을 나와야 했고, 수도성소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례자가 되기로 결심한 성인은 맨발에 옷 한 벌만 갖고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이후 3~4년 동안 그는 이탈리아 로레토·아시시·바리, 스위스 아인지델른, 프랑스 파레 르 모니알,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등 서유럽의 성지 곳곳을 순례했다.
그는 어디를 가든 오로지 기도를 하고 구걸을 해 연명했다. 사람들의 냉대를 받아도 기쁘게 받아들였고, 적은 음식도 가난한 이들과 나누었으며, 간혹 돈을 얻으면 다른 이들에게 나눠줬다. 말년엔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렀는데,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40시간 성체조배를 하곤 했다. 몸을 돌보지 않는 혹독한 순례와 기도로 그는 1783년 성주간 수요일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한 뒤 세상을 떠났다.
1881년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고, 노숙인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