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7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순조로워 보였던 남북 관계가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돌변했다.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며 경색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6월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고, 남북 관계의 속도 조절을 위해서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그간의 과정을 통해서 볼 때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기까지는 물론 그 이후에도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안정,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과 미국이 기대하는 것을 짚어보자.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 안정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까지 수차례에 걸쳐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하고 마침내 핵 위업을 달성했다고 공언한 것 역시 미국을 침략하기 위함이 아니라 체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통해 북한을 핵무장에서 해제시키기를 원한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언제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공통점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 정의의 실현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전쟁 위협이 없는 평화, 체제 붕괴의 위험이 없는 안정을 원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남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핵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느끼는 문제보다는 체제 붕괴에 대해 북한이 느끼는 불안은 훨씬 심각하고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외부 세력에 의하지 않더라도 3대째 이어지는 세습 정권, 억압적 사회주의 체제, 경제적 궁핍 등의 대내적 요인들이 체제 붕괴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화를 단절한 속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급속한 대화와 교류 협력이 “공화국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김정은 위원장 2018년 신년사)을 저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혹은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이런 상황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종 목적지(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누리는 사랑의 친교)이실 뿐 아니라 당면한 목표를 향해 잘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느님(성부)이시다. 이 하느님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성자)이시다. 성자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굳건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이 하느님은 우리 안에 거처하시면서 우리 몸을 당신의 궁전으로 삼으시는 하느님(성령)이시다. 성령이신 하느님은 우리가 육의 행실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이끄신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화해와 협력, 통일), 우리 앞길을 인도해 주시는 성부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와 안정) 성자 하느님께서 당부하신 것처럼 ‘시대의 표징’(마태 16,3)을 분별하면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마태 10,16)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같은 육의 행실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사랑, 기쁨, 평화, 안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같은 열매를(갈라 5,20.22-23) 가지고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면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 귀 기울여야 한다.
오늘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