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신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사형(餓死刑)에 처해진 다른 수용자를 대신해 목숨을 바쳤다.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난 성인은 16세에 수도회에 입회했다. 로마에서 철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18년 사제품을 받은 뒤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나치에 의해 체포돼 수용소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2년 뒤 유다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된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돼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성인은 고통 속에서도 늘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신이 수용소에 끌려온 것이 하느님 섭리라고 여겼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말, 그가 머물던 막사에서 탈주자가 발생하자 10명의 수용자가 아사형에 처해졌다. 10명 중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는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한 수용자를 대신해 죽음을 선택했다.
굶주림으로 다른 동료들이 한 명씩 죽어나갔고, 2주 이상 물과 음식 없이 생존했던 그에게 나치는 독극물을 주사했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콜베 신부는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1948년 그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됐고, 마침내 1982년 10월 10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