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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직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소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주는 대로 펜실베이니아 주 검찰 조사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성폭력 피해자 1000명을 세고 있다. 막대 표시로 형상화한 시편 34장 19절에는 상처받고 짓밟힌 이들에 대한 주님 구원의 약속이 기록돼 있다. 미국의 만화가 조 헬러가 그린 그림이다. 【CNS】 |
미국 가톨릭교회가 또다시 부끄러운 과거의 사실과 마주했다.
1940년대부터 약 70년간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아동 성범죄에 연루된 성직자가 300명에 달하고, 확인된 피해자만 1000명이 넘는다는 주 검찰과 대배심의 실태 조사 보고서다.
14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주에 있는 6개 교구에서 성직자들이 상습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아동을 상대로 성추행하거나 성폭력을 가했다. 책임자들은 피해자들의 탄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추문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대배심은 지난 2년간 교구 문서를 열람하고, 피해자와 목격자를 면담하는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가 나오자 해당 교구의 주교들은 거듭 사과와 반성을 쏟아내고 고개를 떨궜다. 해리스버그교구의 로널드 게이너 주교는 “크나큰 슬픔 속에서 보고서를 읽었다”며 “하느님 눈에 너무나도 소중한 어린이가 모든 이야기의 뒤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슬프다”고 밝혔다. 피츠버그교구의 데이비드 주비크 주교는 “축성된 이들에 의해 신뢰와 신앙, 행복을 짓밟힌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용서를 청한다”며 “교회가 성추행 혐의에 대해 신속하고 확고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가해 사실이 적시된 성직자들이 모두 법적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의 3분의 1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대다수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 대상이 아니다.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 현재까지 법적 처벌 대상은 단 두 명뿐이다.
미국 가톨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제 성추행 문제에 공개적으로 대처했으나 과거의 상처까지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스턴대교구의 사제 성추행 스캔들 폭로(2002년)로 위기에 처했을 때, 주교회의는 ‘아동 및 청년 보호를 위한 헌장’을 만들어 결연한 대처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과거의 악(惡)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헌장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워싱턴대교구 명예 대주교인 시어도어 맥캐릭 추기경이 과거의 성범죄 의혹으로 추기경직을 자진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져 미국 가톨릭은 또다시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엄중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교회 위상 실추에 그치지 않는다. 신자 이탈과 사제 성소 감소, 잇따르는 소송과 막대한 배상금 지급 등 연쇄 반응이 장기간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중대한 사안이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폐쇄적인 침묵의 문화를 청산하는 등 쇄신 작업을 가속화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도전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다. 2016년 자의교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를 통해 사제 성추행과 책임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데 이어 실제로 괌, 미국, 칠레 등의 교회에 이 원칙을 적용했다. 또 해외 사목방문 때마다 피해자들을 비공개로 만나 함께 울면서 심각한 과오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있다.
한편, 그렉 버크 교황청 대변인은 16일 보고서에 적시된 사실에 대해 “교회는 과거로부터 매서운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교황청은 지속적 개혁과 아울러 아동 및 취약한 성인 보호를 위한 모든 차원의 감시 행위를 지지한다”고 논평했다. 또 희생자들에게 “교황은 여러분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