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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제주 여성 독립운동가 ‘강평국’

일본서 도쿄조선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 등 독립운동 투신… 여성 계몽·교육에도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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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평국과 최정숙, 고수선은 제주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하지만 강평국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후대를 남기지 못해 관련 자료가 제대로 없어 독립유공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타자 연습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평국(오른쪽)과 최정숙.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제주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여성 운동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정숙(베아트리체, 1902~1977)과 고수선(엘리사벳, 1898~1989), 강평국(아가타, 1900~1933)이다. 광복 후 세상을 떠난 최정숙과 고수선은 공로를 인정받아 일찍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지만, 미혼으로 이른 나이에 선종한 강평국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강평국도 다른 독립운동가만큼 뜨거운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그의 일생을 ‘불꽃’ 같다고 했다. 독립을 위해 몸 던졌던 강평국의 삶을 사료와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간 경술년에는 온 동네가 초상집 같았다. 사람들은 일본에 나라가 넘어갔다며 ‘망년(亡年)’이라고 했다. 일본의 간섭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나의 친구들, 친구들의 부모님, 옆집 어르신들은 나라가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나라를 되찾는 일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이름을 ‘년국(年國)’에서 ‘평국(平國)’으로 바꿨다.

서울에서 유학하던 시절 내 인생 가장 강렬한 경험이 찾아왔다. 나는 제주에서 같이 학교를 졸업한 정숙이, 수선이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우린 비밀조직인 ‘학생결사단’에 가입했고, 졸업을 앞둔 1919년 3월 1일 거대한 만세 물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만세를 외치며 서울역 앞까지 갔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총격이 시작돼 걸음을 돌려 세브란스 병원으로 겨우 몸을 피했다. 정숙이는 종로로 가다 사람들에게 휩쓸려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나는 경찰의 체포를 피한 덕분에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일본 국가를 목청 높여 부르며 졸업장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길로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왔다.

고향 사람들은 나를 ‘여선생’이라고 불렀다. 제주에 여자 교사가 부임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숙이도 옥살이를 마치고 제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으로 사라진 모교를 대신해 제주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여수원’을 설립했다. 학생들은 날카롭고 불같은 선생이라며 나를 무서워하기도 했다.

교육자로 살면서 독립운동을 멈출 순 없었다. 일제 통치를 반대하는 청년단체 ‘반역자구락부’를 설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참여했다. 또 정숙이와 함께 ‘제주여자청년회’를 만들어 여성이 권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더 다양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으로 가야 했다. 1926년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제주 여성 중에선 해외로 유학을 떠난 사람은 내가 첫 번째였다. 쉽진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일본에서도 항일운동은 계속했다. 조선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염원했다.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건강이었다. 일본에 온 뒤 늑막염이 심해졌다. 공부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제주로 돌아왔다. 귀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33년 1월, 광주에서의 비밀결사 활동이 발각돼 일본 경찰에 붙잡혀 광주로 끌려갔다. 조사를 마치고 다시 제주로 왔을 때, 나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10일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다.

48년이 지난 후 동지들이 세워준 추도비에는 이런 비문만 남아 있다.

‘슬프다. 시대의 선구자요 여성의 등불인 그는 삼일운동 때 피 흘려 청춘을 불살랐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품은 이상 이루지 못한 채 애달픈 생애 담고 여기 길이 자노니. 지나는 손이여 비 앞에 발 멈춰 전사의 고혼에 명복을 빌지어다. 여기 뜻있는 이 모여 정성 들여 하나의 비를 세우노니. 구천에 사무친 애로운 영이여 고이 굽어살피소서.’

백슬기 기자 jdarc@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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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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