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에 입문해 신앙의 힘으로 버텼다. 옥중에서도 재심을 고민했으나 증거가 없어 뒤집기 어렵다고 주변에서 말렸다.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이런 기회가 생긴 것 같다.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면 내 세례명 빈첸시오처럼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윤 빈첸시오, 조선일보 인터뷰)
화성 8차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여 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진 윤모(빈첸시오, 52)씨 사연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화성 8차 살인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13살 박모 양이 피살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를 토대로 윤씨를 체포했고, 윤씨는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을 통해 범인으로 확정됐다.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19년 6개월간 복역한 후 모범수로 석방됐다. 윤씨가 구치소와 교도소 등에 수감된 기간은 1989년 7월 25일 검거된 날로부터 출소한 2010년 5월 7일까지 총 7592일이다.
영원히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처제 살인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56)가 10월 초 “화성 8차 사건도 내가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 다시 세상의 시선을 끌게 됐다. 교도소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경찰은 이춘재를 강간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20년간 옥살이했던 윤 빈첸시오씨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경찰의 강압수사와 부실한 재판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당시 경찰 수사는 모두 조작됐으며 경찰이 사흘간 잠을 못 자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며 “사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1심 법정에서 범행을 인정했다가 2심 때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묵살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돈으로 1500만 원을 줘야 개인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었다”며 “돈이 없어서 국선변호사를 선임했지만 1ㆍ2심 통틀어 두 번 봤고 재판에서 ‘선처를 바란다’고 한 것이 전부”라고 억울해 했다.
윤씨는 재심(再審) 사건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1차 경찰 수사, 2차 검찰 수사, 법원에서 진행된 3번의 재판 등 5차례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춘재의 자백, 윤씨 증언, 경찰 수사 진행과정을 종합하면 윤씨의 옥살이는 30년 전 국가 공권력의 무지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또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 큰 구멍이 났었던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