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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 (68) 티셔츠와 어머니, 그리고 영원한 삶 / 윌리엄 그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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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뉴욕 5번가를 걷다가 티파니 보석가게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봤다. 티파니의 창의적인 윈도우 디스플레이가 사람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서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느 뉴욕 사람들처럼 군중들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알아보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티파니에는 길가에 두 개의 작은 창이 있었는데, 창에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장식돼 있었다. 각 창에는 마치 세탁소처럼 작은 하얀 티셔츠들이 놓여 있었고, 각각의 티셔츠에는 어머니들이 하는 잔소리들이 쓰여 있었다. “아버지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라!”, “내가 엄마야!”, “누가 다리에서 뛰어 내리면 너도 그렇게 할 거냐?”, “손 좀 씻어라!”, “이게 방이냐 돼지우리냐?”, “채소 좀 먹어라” 등등.

기억하기론 한 50개 정도 어머니들의 잔소리가 적혀 있었고, 같이 이 문구들을 읽고 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 말들을 수없이 들었다. 아마도 다른 언어권과 문화권에서도 이런 문구들이 통할 것이다. 어머니가 된 사람들을 위해 이런 잔소리가 적힌 팸플릿이 나오기라도 하는 것인가? 소녀들은 아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이런 말들을 배웠으리라. 아마도 하와만이 이런 말들이 적힌 책이 필요한 유일한 어머니였을 터다.

내 어머니는 티셔츠에 적히지 않은 다른 잔소리를 늘 하셨다. 바로 “너는 오래 전에 죽었을 거야”라는 말씀이셨다.

어머니께선 여러 의도로 이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은 “인생은 짧으니 소중한 삶을 살아라” 혹은 “인생은 짧으니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아라”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또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라는 말도 “죽음 뒤에 오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도 삶이 그저 잉태 전과 사후 부존재 사이의 막간이 아니라는 희망적인 확신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존재할 것이고 또 계속 이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 삶을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 우리 삶을 알고 계시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알지 못하지만, 더 알기를 원해 시적 언어에 기대고 있다. 단순한 단어와 그림을 넘어선 언어와 시각적 이미지도 표출된다. 우리는 음악과 구름, 후광, 날개, 호텔 지배인처럼 문 앞을 지키며 입장을 통제하는 베드로 성인과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내가 상상하는 죽음 이후에 생기는 일에는 심판도 포함된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내가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일 것이다. 하느님 자녀로서의 나의 소명에 내 삶이 얼마나 충실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운 모든 이들도,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모든 일들도 기억할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의 성소와 다른 이들, 그리고 하느님을 어떤 방법으로 배신했는지도 알 수 있다. 나는 이전 세대가 남겨 준 유산을 허비했으며, 내 소홀함과 이기심으로 파괴된 세상을 후대에 남겨주고 있다. 아마도 나는 연옥에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하고 다른 이의 사과를 받으며 이를 수용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얼굴 붉힘’이라고 부르겠다.

이러한 얼굴 붉힘은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용서의 축제 중에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 주님의 용서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전인 지금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이는 기쁨의 얼굴 붉힘이지만, 어쨌든 수치로 생기는 얼굴 붉힘이다.

최근 미국을 포함해 브라질과 중국, 헝가리, 북한, 필리핀, 러시아, 태국, 터키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오는 정치 뉴스를 보며, 내 어머니께서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에게 “너는 오래 전에 죽었을 거야”라고 잔소리를 해 주길 바란다. 이들의 기회주의적 정책으로 훗날 이들은 크게 얼굴을 붉힐 일이 있을 것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 운명이라면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로 훗날 얼굴을 붉힐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만일 내가 나중에 얼굴 붉힐 일을 대비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무엇을 피해야 할까? 이웃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면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중에 이들의 용서를 청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웃을 돕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티파니 보석가게 티셔츠에 쓰여 있던 말대로 살아야 하겠다. “착하게 굴어라!”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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