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내전 당시 피란민 보살피던 미 선교사들, 정부군에 피살교황, 선교사들 순교자적 삶 기려… 미국·로마에서 추도 이어져
1980년 내전에 휩싸인 중남미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다 정부군에 피살된 미국인 선교사 4명의 40주기 추도식이 2일 엘살바도르와 미국, 로마 등 곳곳에서 열렸다.
메리놀수녀회 소속 이타 포드 수녀와 마우라 클라케 수녀, 우르슬라회 도로시 카젤 수녀, 평신도 선교사 진 도노반. 이들 4명은 군인들의 협박을 무릅쓰고 가난한 여성과 난민들을 보호하다 그해 12월 2일 정부군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주민들이 우리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을 두고 도망갈 수 없다”고 한 도로시 카젤 수녀의 말은 최후의 신앙 증거가 됐다.
내전은 쿠데타로 정권을 강탈한 군부 세력과 귀족층이 권력과 재산을 독차지하면서 빚어진 극심한 빈부 격차가 주원인이다. 배제되고 소외된 민중은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일부는 무장 게릴라 조직에 가담했다. 독재 정권은 심지어 암살단을 동원해 저항 세력을 제거해 나갔다. 2년 전 시성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성당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피살된 때가 내전 초기인 그해 3월이다. 4명의 선교사처럼 힘없는 이들 곁에서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던 활동가들은 ‘공산주의자’, ‘급진 좌파’라는 낙인이 찍혀 어디론가 사라졌다.
평신도 선교사 진 도노반은 피살 2주 전 미국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렵지만 가난한 이들 때문에 선교지를 떠날 수 없다고 밝혔다.
“몇 번이나 엘살바도르를 떠나려고 했어. 여기 아이들과 이 광란 속에서 상처받은 가난한 사람들만 없다면 그럴 수도 있을 거야. (내가 떠나면) 이 사람들을 누가 보호해줘? 어느 사람의 마음이 이 눈물과 무기력함의 바다에서 ‘합리적인 것(탈출)’을 택할 만큼 확고하겠니?”
로메로 대주교의 요청으로 엘살바도르 빈민가에 들어가 활동한 마우라 클라케 수녀는 “우리가 그들의 십자가 고통을 외면한 채 어떻게 부활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피살 당일, 니카라과에서 열린 메리놀수녀회 회합에 참석하고 공항에 도착한 이타 수녀와 마우라 수녀는 마중 나온 도로시 수녀, 평신도 선교사 진 노도반과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 하지만 미행하던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차를 빼앗고, 4명을 끌고 가 성폭행한 뒤 끔찍하게 살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선교사 4명의 순교자적 삶을 기리면서 “이들은 복음적 헌신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피난민들에게 음식과 약을 나눠줬다. 이들은 큰 헌신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실한 선교사가 되려는 모든 사람의 모범이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