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교황청/해외교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글로벌 칼럼] (72) 이런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 윌리엄 그림 신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1973년 크리스마스에 나는 신학생으로 일본에 와 있었다. 그해 나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 크리스마스를 지냈다.

당시 일본은 전쟁 후 일으킨 ‘경제 기적’의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1970년대 말 최고 베스트셀러 책이 「세계 제일 일본」(Japan as Number One)일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이 기적은 완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수도 도쿄도 마찬가지였다. 도쿄 대부분 지역에서 하수도가 연결되지 않아 ‘똥차’로 불렸던 분뇨 운반차들이 정화조를 치우는 것이 흔했다. 주거지역에는 분뇨 냄새로 가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졌던 집들은 좀 더 튼튼한 구조로 다시 지어지고 있었고, 아직 수퍼마켓이 생기지 않아 상인들은 손수레에 식재료와 생활용품들을 싣고 다니며 팔았다. 이들은 종이나 뿔피리 등으로 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는데, 파는 물건에 따라 각기 다른 도구로 소리를 냈다. 똥차보다는 이런 소리가 더 그립다.

고작 몇 주 동안 일본어 수업을 받았던 나는 어학원을 벗어나 한 신부님과 함께 북쪽의 눈 많은 홋카이도의 한 탄광마을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기로 했다. 그 신부님은 나에게 외딴 지역 오른쪽에 산이 있는 마을로 오라고만 했다.

당시만 해도 홋카이도에서는 증기기관차가 석탄들을 실어 날랐고, 막 디젤기관차가 도입되던 시기였다. 항상 멀리서도 검은 연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기에, 이 외딴 마을을 찾는 일은 쉬웠다. 지금은 더 이상 이 마을은 교통 요지가 아니고, 심지어 다른 마을과 합쳐져 없어져 버렸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 신부님은 나에게 자신은 산골짝 작은 정착지 사람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길 바랐다. 그곳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교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부가 맨손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성탄 전날 차에 과일과 사탕을 가득 싣고 눈으로 가득한 마을을 찾아 떠났다. 눈 때문에 더 이상 운전할 수 없을 때까지 차를 타고 가다가 나중에는 걸어서 마을을 찾아갔다.

파티는 한 헛간에서 열렸는데, 벽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계속 들어왔다. 이 집에는 다섯 남짓의 아이들이 있었고, 술에 취한 한 남자 어른은 산타 옷을 입고 있었다.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준 뒤, 빙고 게임을 가르쳐줬다. 아이들 중 한 명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숫자를 몰라 게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숫자 정도는 알고 있던 내가 그 아이와 짝을 이뤄 게임에 참여했다.

이 헛간에는 눈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산타는 한쪽 구석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 빙고 카드에 숫자를 적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집과 친구들을 떠나 지구 반대쪽에서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전부였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했다. 이런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그리고 아주 갑자기 헛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혼잣말을 했다. 바로 베들레헴이라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올해 크리스마스는 내가 일본의 한 헛간에서 지낸 것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우리가 지내던 파티와 연말 행사 없이 지내게 하고 있다. 평소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함께 식사하고 심지어 교회에도 나갔지만, 올해는 이런 크리스마스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가족과 친구를 잃어 애통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 운영도 지장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널리 보급돼 이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게 되기 전인 오는 1월 가장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생명을 포함해 우리의 많은 것을 잃은 지금, 한 단어가 떠오른다. 바로 베들레헴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은 채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야 한다. 한 가지만 빼고.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인형이나 노래와 이야기의 주인공, 연말의 오락거리가 아니라 임마누엘 주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이 가장 나쁠 때, 가난할 때도 함께 계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뤄주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란과 실망, 고통, 죽음을 나누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들레헴의 의미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깨닫는 시기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 시대 크리스마스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내년에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주님의 성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12-2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0. 6

신명 6장 5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