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서천본당(주임 김종민 신부)은 최근 본당 관할인 ‘작은재 줄무덤 성지’에 순교자 가족 묘역을 조성하고, 순교자 이화만(바오로)과 장남 이범인(요한 크리소스토모), 차남 이범식(그레고리오)을 기리는 ‘삼부자 순교비’를 세웠다. 이로써 1994년 군에서 임도를 개발하면서 순교자들과 가족들로 추정되는 유해가 마구 파헤쳐지고 버려진 작은재가 성지로서 제모습을 갖추게 됐다.
본당은 5월 19일 작은재 줄무덤 성지가 자리한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77(1만 6344㎡)와 산78(5256㎡) 두 필지 가운데 1983.47㎡(600평)의 부지를 용도 변경해 ‘순교자 가족 묘역’을 조성했다. 다만 순교자 이화만과 두 아들은 순교 뒤 유해조차 남기지 못해 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묘역에 있던 순교자 가족 9위의 무덤만 작은재 성지로 이장하고 무덤을 옮겨 다시 장사를 지내는 ‘면례’(緬禮), 곧 묘역 이전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번에 순교자 가족 묘역에 이장된 이들은 이화만(바오로) 순교자의 부인 정 마리아, 맏아들 이범인의 부인(이름은 밝혀지지 않음), 둘째 아들 이범식의 부인(역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음), 다섯째 아들 이범항(토마스)과 첫째 부인 정 안나ㆍ둘째 부인(이름이 밝혀지지 않음), 이범항의 아들 이신병(요한)과 첫째 부인 박 안나ㆍ둘째 부인 신 막달레나 등이다.
본당은 이어 5월 22일 작은재 줄무덤 성지에 이화만과 두 아들 순교자를 현양하기 위해 ‘삼부자 순교비’를 세웠다. 1.5m 높이 오석으로 제작했으며, 빗돌 전면에 ‘삼부자 순교비’를 한글로 크게 새기고 그 아래에 순교자 명단과 경위를 기록해 놓았다.
청양군 정산 출신으로 하부 내포 보령 서짓골에 살던 이화만과 두 아들은 1866년 3월 30일 충청수영 인근 보령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와 위앵ㆍ오매트르 신부, 장주기(요셉), 황석두(루카) 등 5위가 순교한 뒤 시신이 버려져 모래 자갈 속에 방치되자 그해 8월 중순께 인근 도앙골 교우들과 함께 삯배로 황석두 성인을 제외한 4위의 시신을 서짓골로 옮겨 이장했다가 순교자 유해를 옮긴 사실이 발각되면서 체포돼 그해 12월 12일 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했다. 이화만과 두 아들은 “무참하게 맞아 죽었고, 시신은 버려졌다”는 기록과 구전만 전해질 뿐 시신을 남기지 못했다.
이화만 순교자의 6대손인 이기정(야고보, 74, 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본당)씨는 “이번에 작은재 줄무덤 성지를 성역화하게 되면서 본래 작은재 성지에 묻혔다가 부여 지석리로 이장했던 이화만 할아버지의 부인과 자녀, 며느리 등 순교자 가족들의 묘역을 원 매장지인 작은재 성지로 옮기게 됐다”면서 “늦게라도 순교자의 가족들을 챙겨주셔서 교구와 서천본당에 고맙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민 신부는 “순교자 이화만과 두 아들 순교자의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이들의 순교 이후 작은재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순교자 가족의 묘역을 조성하게 됐다”면서 “이번에 작은재에 순교자 가족들을 모시게 되면서 작은재 줄무덤 성지의 꼴이 갖춰지게 됐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