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몇 세부터일까.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이래저래 오래 살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보니 별 얘기들이 많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이나 나이 들어 주변으로부터 환영받는 방법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저 가족이나 주변에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이 큰 고통을 받지 않으며 조용히 늙어가는 데 만족할 듯싶다. 문제는 이런 소박한 바람도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노년의 자기 모습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나 수련이 필요하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도달한 곳이 현재의 나의 모습이니 곁에선 그냥 받아들이라는 막무가내식 노년은 무책임하다. 그럼 어떤 수련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화’를 다스리는 훈련이다. 숨이 붙어있는 한 정말 어려운 과제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무언가 억울하고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저 못마땅하다. 지금보단 더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분노를 떨쳐버리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다 간 이들을 기억하자.
둘째, 나이 적은 세대와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독서에 맛 들이면 좋고, 아니더라도 TV와 SNS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넘친다. 다양한 화제에 관심 두고 젊은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을 꾸준히 연마하자. 두뇌의 노화 억지에도 좋다.
셋째, 대화를 위해 필요한 품성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경청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나이 들수록 자기 생각과 주장이 강해진다. 내 경험과 입장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젊은 세대와의 대화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말 수를 줄이고 오지랖 부리기는 자제하자. 이런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같은 얘기 반복하며 듣는 이들만 괴롭힐 뿐이다.
넷째, 고독을 당연시하고 가급적 즐겨보도록 애쓰자. 노년엔 주변과 자주 어울리는 게 우울증 예방에도 좋다고 조언하지만 평소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억지로 주변과 섞이는 일이 스트레스일 수 있다. 독서나 음악감상, 그림 그리기, 산책 등 노인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외로움을 이겨내려 하지 말고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길을 찾자.
다섯째, 만사가 귀찮고 냉장고 문 여는 것조차 힘든 나이가 아니라면 한두 가지 음식이라도 혼자서 만들어 먹는 취미를 키우자. 미리 생각해 둔 요리가 있다면 이를 위해 장보기부터 시작해 보자. 평생 부엌살림을 해 온 분들이라면 지겨울 따름이겠지만 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더 늙기 전에 머리 쓰고 손 움직여 음식 장만해 보는 재미를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음식 조리는 분명 치매 예방에도 좋다.
슬기로운 노년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한 가지 더, 이제까지 살면서 기억 속에 축적된 인연들을 이따금 회상해 보자.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악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아니면 ‘오죽했으면’이란 생각으로 가슴 속에 묻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좋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격하지 않게 기억 속에 묻어나는 은은한 향기를 음미해 보도록 하자. 불편했던 관계를 되새기며 마음 상하기보다 과분했던 인연에 감사하는 것이 다시 엮일 일 없는 인연을 슬기롭게 정리하는 방법이다.
나이 들면 냉담하던 종교도 다시 찾게 되고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막연하게 기도하는 습관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기도할 줄 아는 힘이다. 슬기로운 노년생활 준비를 위한 이런저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동안의 평온함과 은근한 기쁨을 익혀가는 것만 한 게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