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가 복권을 좋아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역대 한국 교회 교구장 가운데 복권을 사랑한 주교가 있다. 바로 제8대 조선대목구장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이다. 뮈텔 주교는 심지어 복권에 당첨되기도 했다. 뮈텔 주교가 무슨 목적으로 어떤 복권을 샀는지 정리한 글이 최근 발표됐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남소라 연구원이 「교회와 역사」 11월 호에 실은 글이다. 주님 성탄을 고대하며 가난한 이들의 고달픈 삶을 돌아보는 대림 막바지 시기에 뮈텔 주교의 복권 이야기를 정리해 소개한다.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는 뮈텔 주교가 구매한 복권들을 소장하고 있다. 뮈텔 주교가 산 복권에는 모두 ‘RAFFLE’(래플)이라고 적혀 있다. 사행성 복권이 아니라 기금 마련을 위한 추첨식 복권이란 뜻이다.
뮈텔 주교는 1915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발행한 자선 복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그해 10월 3일 일기에 “자선 복권을 준비하는 수녀들을 방문했다. 의류가 200점이다. 복권은 1엔짜리 1000장인데 수녀들은 고객인 부인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적었다. 11월 21일 일기에서 “이미 팔린 복권은 835장인데 1000장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수녀원에서 판매하는 자선 복권에 대한 호응이 높음을 밝히고 있다. 자선 행사가 있던 11월 27일 당일에는 “수녀원에서 자선회가 거행됐다. 팔린 복권은 1엔짜리 1000장. 그중 205명이 받은 상품들은 매우 훌륭했다. 30명가량의 유럽인 부인들이 참석했고, 일본인 부인들도 있었다”고 적으며 자선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것에 흡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뮈텔 주교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부터 1918년까지 여러 복권을 샀다. 1916년 2월 15일 주한 영국 총영사관은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세르비아인들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를 주최했다. 뮈텔 주교는 이 행사에 참석해 ‘세르비아인들의 구호 기금 마련 복권’을 추첨했다. 복권 가격은 1엔이었고, 25개 경품이 있었다. 뮈텔 주교는 이 복권을 5장 구매했다. 번호는 238번에서 242번까지였다. 뮈텔 주교는 이날 당첨돼 경품으로 얇은 토끼 가죽을 받았다.
뮈텔 주교는 또 1916년 10월 18일 주한 러시아 총영사관이 개최한 다과회 및 복권 판매 모임에 참여했다. 이 복권 판매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다친 러시아 군인들과 전쟁 피해자를 위한 기금 마련이었다. 뮈텔 주교는 이 복권도 구매했다.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그는 일기에 “참석자들은 대단히 적었는데 지난봄의 비슷한 모임 때보다 훨씬 적었다. 아마 대중은 자선 사업에 대한 끊임없는 이같은 초대에 싫증 난 때문일 것”이라고 적었다.
뮈텔 주교는 또 1917년 5월 30일 ‘프랑스 전쟁고아들을 위한 복권’을 구매했고, 구매한 복권 가운데 2장이 당첨돼 상품으로 이집트 담배 한 갑과 꽃병 하나를 받았다. 아울러 뮈텔 주교는 1818년 ‘이탈리아 적십자회 돕기 복권’을 샀다.
이처럼 뮈텔 주교가 구매한 복권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의 희생자들을 돕는 기금 마련 복권이었다. 비록 한 장에 1엔씩 하는 복권이었지만 뮈텔 주교는 가난한 이들, 사회 약자들을 돕는 데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