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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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순의 교회, 세상의 혼처럼] 들음, 세상의 혼이기 위한 첫 번째 걸음

최현순 데레사(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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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되고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어야 할 인류 사회의 누룩으로서 또 마치 그 혼처럼 존재한다.”(「사목헌장」 40항)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표현은 「사목헌장」 1부 ‘인간의 소명과 교회’의 마지막 장(4장)에 나온다. 세상의 혼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교회는 “나는 당신을 살게 하는 힘이야”라고 자신을 시작부터 세상에 소개하지 않는다.

사실 공의회 첫인사는 이것이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1항) 이런 태도는 인간(1장)과 공동체(2장)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을 다루면서 새 인간이요 참 인간이며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맨 마지막 항목(12항)에 소개되고, 인간 공동체를 다룰 때에도 2장 마지막 항목에서야 그리스도는 인간 공동체의 모범이요 공동체의 원리로 제안된다.(32항) 이것이 「사목헌장」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취한 방법, 곧 귀납적 방법론이다. 이후 교황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에서 이 방법의 사용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공의회가 세상의 소리를 듣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비추어 교회의 답을 제안하는 것만이 아니라(41~43항)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배울 것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교회를 역사의 사회적 실재로 또 그 누룩으로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듯이, 바로 교회도 인류의 역사와 발전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지 않는다.”(44항) 유럽 교회의 역사를 고려할 때, 공의회의 이런 태도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그런데 교회가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도움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을 교회가 ‘겸손해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고 가볍기조차 하다.

이것은 공의회가 하느님을 구원자이자 동시에 창조주로, 그래서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묘한 섭리로 시간의 흐름을 다스리시며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시면서 세상이 발전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선언한 것과 연관된다.(26항)

결국 ‘들음’이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혼이기 위하여,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내디뎌야 할 첫 번째 걸음이다. 그리고 이 들음은 세상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사실 교회 안에서 들음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향해 듣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룩함을 뜻하는 한자 聖(성)은 본래 “귀로 밝게 듣는 능력”을 뜻하고, 종교적으로는 ‘하늘의 계시나 신의 소리를 밝게 듣는다’는 의미로 확장됐다고 한다. 하느님 백성은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데, 거룩함은 사실 하느님 자신이다. 이 여정, 곧 시노달리타스의 첫걸음 또한 들음이다. 목자와 신자들이 하나되어 가는 이 여정에서 목자는 신자들의 소리를, 신자들은 목자의 소리를 들으며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간다. 이러한 상호 경청을 통해 궁극적으로 듣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소리다. 들음은 교회 안의 삶에서나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나, 곧 세상 안에서 혼이기 위해서나 그 첫걸음이요, 사실은 그 삶과 활동이 이루어지는 매트릭스 같은 것이다. ‘들어줌’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수월하게 만든다. 우리가 먼저 들어주면 세상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려는 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 이 기대가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공의회도 그렇게 제안하고 실천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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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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