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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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평화칼럼] 예수님 생각

박용만 실바노(재단법인 같이걷는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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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이 다급하게 전화를 하셨다. 급식소 근처의 길가에 노숙인이 한 사람 있는데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 하셨다. 병도 있어 보이고 상태가 심각해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병원에서 받아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우선 씻기고 최악의 상태를 면하는 것이 급하니 도와달라는 연락이었다.

급히 봉사자 두 명을 불러서 갔다. 탑골공원 바로 앞 인도에 담요 몇 장을 두른 채 있는 노숙인의 상태는 한눈에도 처참했다. 휠체어에 태우느라 일으켜 세우니 앉았던 자리에 대소변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바지며 외투도 오물로 완전히 젖어 있어 그냥은 부축조차 쉽지가 않았다. 우리도 급히 인근 편의점에서 우비를 사서 입고, 그분을 안아서 부축해야 했다. 마스크를 썼어도 악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급식소에서 궁여지책으로 찾은 장소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따뜻한 물을 받아 씻길 준비를 했다. 양말을 네 켤레나 겹쳐 신었는데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굳어서 벗겨지질 않아 결국 물에 한참을 적셔 빼냈고, 나머지 옷과 함께 그대로 봉투에 담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까지는 꽃동네에 있었다고 하는데 씻기는 동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놈의 자식 땜에 쫓겨났어. 코로나란 자식 말이야.”

옷을 벗기자 드러난 몸의 상태는 상상 이상이었다. 다리와 엉덩이에 뭔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니 온통 욕창으로 군데군데 썩고 있는 피부가 떨어져 나가며 매달린 것이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손이 닿으면 “아파! 아파!” 하고 호소를 한다. 씻기는 동안에도 괄약근 조절이 안 돼 계속 대소변을 흘린다.

배운 대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혼잣말을 했다. ‘나는 오늘 예수님을 만난 거다. 상처투성이에 피와 오물로 뒤덮인 예수님을 만난 거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 애를 쓰긴 했지만, 악취와 처참한 모습의 충격은 호락호락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역시 내 신앙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차라리 인정하고 자책을 하니 그나마 조금 견딜만했다. 씻기고 수염도 자르고 나니 그나마 모습이 조금 나아졌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이 떠나질 않는다. 노숙하지 말고 일이라도 하라고? 술을 왜 마시냐고? 선택지도 많고 편안한 우리 시각에서 본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일 뿐이다. 술과 길거리라는 선택을 했을 때 그분에게는 아마도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몸으로 길에서 자며 지금까지 살아 있음이 경이로웠다.

저녁 무렵이 되어 수녀님이 울먹이며 전화를 하셨다. “회장님, 정말 잘 됐어요. 이런 분들은 입원조차 쉽지 않은데 오늘 기적같이 입원이 됐어요.”

그렇게 어렵게 입원이 돼 몇 주 동안 검사도 하고 당장 급한 치료들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 수녀님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쓰신 덕에 주민등록도 복구했고 자립을 위한 준비를 했지만, 막상 홀로 자립을 하기에는 알코올성 치매의 수준이 심각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것이 그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자신이 요양시설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퇴원 하루 전에 알고는 그날 밤 그분은 병원을 나가 자취를 감췄다. 11월 말의 싸늘한 날씨에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수녀님이 원래 있던 자리에도 몇 번을 가봤지만 허사였다.

그날로부터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길 가다 노숙인을 보면 혹시 그분일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본다. 그 벗은 몸이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고 그날 내 마음속에 일었던 소용돌이 같던 생각들도 떠나질 않는다. 그날을 잊지 않게 해주시는 것은 예수님 생각을 다시 일깨우려는 하느님 뜻인가 싶다. 지금도 어느 길가에 있을지 모르지만, 내게 십자가 지신 처참한 예수님 상상을 현실처럼 할 수 있게 해 주신 그분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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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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