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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12월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수학 중인 중국 신부와 신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
4년 전 주교 임명권을 놓고 교황청과 중국 정부가 공동 서명한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가 순조롭게 연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합의는 바티칸-중국 외교 관계 수립의 최대 걸림돌인 주교 임명권에 대해 양측이 타협안을 도출한 역사적 협약이다. 교황의 임명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주교를 독자적으로 선발, 축성(自選自聖)해오던 중국이 임명의 최종 승인권이 교황에게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 합의는 2년마다 효력을 갱신해야 하는 잠정 협약이다. 이미 2020년에 기한을 한 차례 연장했다. 양측은 이번 달로 다가온 재연장 기한을 또다시 연장할지, 아니면 파기를 선언할지 결정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6일 카자흐스탄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이와 관련한 기자 질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바티칸-중국위원회는 속도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위원회의 논의 진척이 더딘 데 대해 “중국은 속도가 좀 느리다는 것을 기자들도 알지 않느냐. 중국을 이해하려면 100년이 걸린다. 중국인은 무한한 인내력을 가진 민족”이라고 말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도 최근 이탈리아의 한 뉴스채널에 출연해 “기한이 연장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고 앞으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뿌린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려면 상황이 어렵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잠정 합의 준비 단계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부를 상대하고 있는 ‘바티칸 외교의 달인’이다.
그렇다고 이 합의가 교황의 주교 임명권을 완전하게 보장한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가 주교를 임명(추천)해도 최종 승인권은 교황에게 있다는 선에서 양측이 조금씩 양보한 것이다.
합의문 전문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그동안 교황 승인 없이 축성돼 사도좌와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주교들을 교황청이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을 때는 중국이 자체 선발한 주교들을 교황청이 파문하는 일까지 있었다. 중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외세(바티칸 등)가 자국 종교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 정부 승인을 받은 애국회(교회)와 정부 통제를 거부하는 지하교회 간의 일치 문제도 일부 언급된 것으로 관측된다. 애국회와 지하교회 간의 해묵은 반목은 바티칸과 베이징이 함께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합의 연장 건 때문에 지난달 초 베이징을 방문한 바티칸 대표단은 지하교회 원로 성직자들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이 잠정 합의문에 서명할 당시 “이번 합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밝혔듯이,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파롤린 추기경은 “요술을 부리듯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교황은 지난 7월에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분명 신임 주교들이 임명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서두르지 않는 시간 감각처럼, 주교 임명도 ‘중국식’으로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