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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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 사제의 눈] 우리는 기록한다

조승현 신부(CPBC 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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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힘이 있다. 어린 시절 적었던 일기장을 들추어보기만 해도 부끄러움이 밀려올 때가 있다. 자신의 철없던 혹은 순수했던 기억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SNS가 일기장을 대신하곤 하는데, 폐쇄된 SNS를 복구한다는 말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폐쇄와 함께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줄 알았던 내 삶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디지털 파일 형태로 고이 기록 저장되어 있었다.

기록의 힘을 아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생을 하는 대통령기록관의 예를 들먹이지 않아도, 어제의 기록을 비틀어서라도 우리의 기억을 바꾸려는 시도는 권력자들이 기록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를 가리는 중요한 항목은 기억에 의존하는 증언보다 눈에 보이는 증거이다.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스마트폰에 기록된 것을 확인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행적을 모두 알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범죄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도 힘이 든다.

때로는 역사의 풍파를 견디며 지낸 인간 자체가 기록이기도 하다. 일본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이 바로 전쟁의 참혹상이 기록된 역사서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이산가족은 지금 당장 남북이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기록이다. 80년 광주의 살아남은 분들은 민주주의의 기록물이다.

또한, 기록은 미래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알베르트 카뮈의 말을 비틀어 어제 기록하지 않는 사건은 내일 사건에 보내는 용기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나 친일파 문제에서 보듯이 과거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는 절망을, 누구에게는 용기를 가져다준다. 독일은 지금도 2차 세계 대전에 저지른 전쟁 범죄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열심히 미래에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기록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범죄는 용기를 얻는다. 요즘 기록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최전선은 인터넷 공간이다. ‘부따’, ‘갓갓’ 등으로 범죄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제2의 인격, 아이디로 포장한다. 성 착취 동영상을 서로 만나지 않고 업로드와 다운로드만으로도 주고받을 수 있다.

역으로 범죄자가 기록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기록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자는 기록으로 피해자를 협박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와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기록)하여 피해자에게 그 영상을 많은 사람이 있는 인터넷에 올리겠다고(기록) 협박한다. n번방 사건에서 보듯이 협박으로 받아낸 성착취 영상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하여 다시 성착취 영상을 받아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하여 온갖 음흉한 범죄가 기록에 원천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평산 마을에서 보듯, 근거 없는 비방과 욕설을 기록하며 이것이 진실이라고 양두구육(羊頭狗肉)하는 기록자들을 보고 있으면, 기록의 폐해를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1인 미디어의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참되고 진실할 수 있는 언론이 더욱 필요함을 느낀다. 기록의 힘을 알기에 오늘 하루를 성찰과 고민하며 기록하는 언론 말이다.

그러기에 CPBC를 포함하여 역사의 기록자 언론의 사명을 성찰해본다. 저 높은 곳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저 낮은 곳의 가난하고 작은 이의 삶의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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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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