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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90세인 조셉 젠 추기경이 9월 26일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홍콩=CNS】 |
‘외세와 결탁해 안보를 위협한’ 혐의로 기소된 전 홍콩교구장 조셉 젠 추기경(90) 재판이 9월 26일 시작되자 세계 여러 나라 가톨릭 지도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이 젠 추기경을 지지하는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젠 추기경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미등록 불법 기금을 통해 시위대를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젠 추기경은 민주 인사들과 함께 시위 도중 체포되거나 다친 시민들의 법률 구조 비용과 의료비를 지원하는 ‘612 인도주의 구제 기금’의 신탁 관리자로 참여했다.
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현 인류복음화부)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은 ‘젠 추기경은 하느님의 사람이자 홍콩과 중국, 교회에 부끄럽지 않은 헌신적인 아들이기에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글을 이탈리아 신문에 기고했다. 필로니 추기경은 자신의 기고문은 ‘진실에 대한 증언’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황청 신앙교리성(현 신앙교리부) 장관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도 “교회는 권력에 기반한 세속적 논리에서 더 자유로워야 하고, 필요하다면 인권을 억압하는 정치 세력을 비판해야 한다”며 젠 추기경의 저항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교구장 살바토레 코르딜레온 대주교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매듭을 푸는 성모님, 우리의 형제 젠 추기경을 위해 중재해주시고, 정의가 실현되어 그가 위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회장 찰스 마웅 보 추기경은 지난 5월 젠 추기경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보 추기경은 성명에서 “젠 추기경은 보편적 자유와 종교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성직자”라며 “홍콩 교회가 본토 교회처럼 투쟁과 박해의 순간에 직면한 것 같아 걱정된다”고 밝혔다.
영국의 인권활동가 다비드 알톤은 “젠 추기경과 민주 인사들 재판은 과거 중국 공산 정부가 상하이의 쿵(Kung) 주교를 체포, 투옥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정부이고, ‘캥거루 법원’이다”라고 비판했다. ‘캥거루 법원’은 홍콩 법원이 중국과 친중파 홍콩행정관의 그늘에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젠 추기경은 중국 본토가 공산화될 때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건너간 살레시오수도회 출신 성직자다. 이후 박해받는 본토 천주교 신자들과 홍콩의 민주주의를 거침없이 대변하면서 베이징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젠 추기경은 지난 5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같은 날 밤늦게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 소식이 바티칸에 전해지자 교황청 공보실장 마테오 브루니는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상황 전개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법 당국은 이번에 젠 추기경과 반중 인사 5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면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국제 사회 여론과 바티칸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