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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밤편지

조승현 신부(CPBC 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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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편지를 쓰겠어요’라는 노랫말이 있듯이 가을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이다. 삶의 무상함과 바쁜 마음으로 챙기지 못한 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 낙엽과 알싸한 공기가 부리는 마법이다.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고 사랑을 주지 못한 이에 대한 미안함이 찬바람에 여미는 옷깃에 묻어있다. 나의 성공을 뽐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도 힘든지 묻고 싶은 것이다. 편지는 추억으로 쓰는 것이다.

지금이야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연락하기 편한 시기라고 하지만 손편지가 주는 맛은 그대로이다. 밤새 편지지 위로 글자를 꾹꾹 눌러쓰면서 단어마다 문장마다 쓰고 지웠다를 반복해보는 시간은 바로 철학의 시간이며 기도의 시간이다. 무엇보다 편지가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차는 밤잠을 설치게 한다. 주소는 틀리지 않았는지, 괜한 편지를 보내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기대와 후회로 잠 못 이룬다. 편지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마음으로 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은총이다. 더욱이 신문을 통하여 읽을 수 있으면 공동체의 복이다. 바로 신영복 선생의 편지가 그렇다. 신영복 선생은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수가 되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엽서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수감 중 생각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에 적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편지가 수백 장이다. 그 편지 중 일부가 1988년 평화신문에 실렸는데, 나중에 다른 편지들과 묶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신영복 선생의 편지가 어떻게 해서 평화신문에 실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반응이 도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서문에 실려 있다. 서문을 작성한 이는 자신을 단순히 ‘평화신문’이라고 했지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다.

“처음에 신 선생의 글을 ‘평화신문’에 싣기에 앞서 다소 망설였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평화신문’이 소외되거나 인권이 유리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실어 어둡고 그늘지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터에 감옥에서 보낸 편지, 그것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무기수(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의 글을 싣는다고 짜증 섞인 항변은 없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우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조용한 호소력이 신 선생의 글에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신영복 선생이 「담론」이라는 책을 내면서 이 책의 출판경위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주셨다.

“옥중 서신 일부가 발췌되어 평화신문에 연재되었습니다. 후배와 지인들이 양심수 석방 운동의 일환으로 소개한 것이었습니다.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연재의 연장선에서 아예 출판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책을 만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충고를 받고 혹시라도 출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우려한 부모님이 출판 연기를 요청합니다. 그래서 출간을 잠시 미루었다가 출소와 함께 출판되었습니다.”

한때 노동운동의 전설로 불리던 김문수 노사정위원장은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했다며, 굉장히 문제가 많은 발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정말로 그랬으면 김일성주의자로 봐도 된다고 했다.

어떻게 노동운동의 전설이 반공의 전설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왜 신영복 선생을 존경하면 김일성주의자가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새 편지를 써본 이는 혐오나 차별의 말을 고운 편지지에 쉽게 적지 않음은 안다. 누군가를 밤새 그리워해 본 이는 인간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덧붙여 신영복 선생을 처음으로 알린 신문이 평화신문이라니. 자랑스러워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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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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