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 국적의 스텔라 수녀가 난민촌에 개설한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플루트 강습을 하고 있다. 미얀마 로이카우교구 제공 |
미얀마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돌보는 사목자들이 “전 세계가 미얀마의 비극을 잊었다”고 한탄하며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태국 영토 내 난민촌에서 난민들과 동고동락하는 도미니크 야레 신부는 “구호 활동가들이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우크라이나 등지로 이동하는 바람에 이곳 난민들은 버림받고 잊힌 느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적 구호기관과 구호인력이 ‘CNN 카메라를 따라다니는’ 한계는 미얀마 난민촌에서도 확인된다.
군부 쿠데타 발생 직후인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세계 유수의 신문방송사들이 태국 국경으로 몰려드는 난민들 상황을 조명한 덕에 구호의 손길이 줄을 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관심이 급격히 식었다. 야레 신부는 “그동안 인도주의 단체들이 왔다 가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봤는데, 이번에도 구호 활동가들이 새로운 위기의 현장(우크라이나)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현재 국경 부근 9개 난민촌에 난민 9만여 명이 분산돼 있다. 미얀마 내전이 극심했던 1990년 초에는 난민 수가 13만 명에 달한 적도 있다.
야레 신부는 2008년부터 난민촌에서 사목하고 있다. 미얀마 교회가 난민촌으로 파견한 신부 5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미얀마 국적의 수녀 2명과 함께 ‘반 마이 나이 소이’ 난민촌을 담당하고 있다. 수녀들은 임시 성당을 중심으로 어린이 공부방과 플루트 교실을 운영한다. 가정환경이 열악한 어린이들을 위한 기숙시설도 마련했다.
난민들은 태국 군인들이 캠프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새장에 갇힌 새처럼’ 하루하루 살아간다. 집은 거의 다 대나무로 엮은 터라 비와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야레 신부는 “미얀마 군부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꿈적도 하지 않는다”며 “만일 군부의 폭력에 저항하는 민병대가 우크라이나군처럼 국제적 지원을 받았다면 난민들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심과 지원이 줄어 난민들은 더 궁핍해졌다”며 “사목 활동에 어려움이 많지만 주교의 철수 명령이 있기 전까지 난민들 가운데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 난민촌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예수회 조 햄프슨 신부는 “난민촌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이곳에서 신부와 수녀의 존재는 비정상적 상황 속에도 ‘정상’인 게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